[행복한 교육] 동문고 자서전 책쓰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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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4 07:52  |  수정 2017-12-20 14:32  |  발행일 2017-12-0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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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고등학교 학생들이 책을 만들었다. 2학년 전체 학생이 쓴 자서전을 모아 반별로 두 권씩, 총 24권을 출간한 것이다. 내용도 편집도 아주 고급스럽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올 학기 초 나는 2학년 문학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문학, 이름만으로도 설렐 것 같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문학’을 수능의 ‘문학 영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 수업은 ‘밑줄 쫘악~’의 감정 강요 시간으로, 소설 수업은 내용의 한 부분만 잘라 읽고 문제 풀이하는 시간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학생 탓이겠는가?

학기가 시작되기 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문학을 배우는가? 우리는 문학 수업으로 어떤 성장을 꿈꾸는가? 내 문학 수업의 방향타가 될 질문이기에 오래 입에 물고 씹었다. 그리하여 ‘수능’이라는 답지 대신 내가 찾은 답은 ‘공감과 치유’였다. 우리는 문학 수업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을 키우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게 되며 다양하게 질문하는 자세를 기를 수 있다.

물론 문학 수업 없이도 학생들의 공감 능력은 뛰어나다. 그러나 의외로 그런 공감이 잘 안 통하는 존재가 있다. 누구일까? 엄마? 선생님?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내가 곁에서 본 바로는 학생들은 선입견 없이 마음을 열고, 누구에게나 정직하게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랑말랑한 심장의 온기를 건넬 줄 안다. 친구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고, 낙담한 친구에게 한없는 긍정의 손길을 내밀 줄 안다. 그런데 그렇게 따스하고 힘 있는 아이들이 정작 자신에게는 냉엄하고 차갑다. 조그마한 실수인데도 맵게 질책하고, 부정적 측면에 집착하여 현재 앞에 자신 없고, 미래 앞에 주눅 들어 있다. 너무 오래 경쟁과 승부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과 친해지고 공감하기를 바랐다. 공감의 전제 조건은 이야기 듣기다. 그래서 17차시에 걸쳐 자서전 책쓰기를 했다. 과거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함께 쓰도록 하였다. 글쓰기가 아니라 ‘귀 기울이기’에 방점을 두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학생들도 차츰 빠져들어 한 시간 내내 시간의 돌다리를 두드리는 자판 소리가 고요하게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쓴 학생 자서전의 서문 일부를 소개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토대로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이루어졌던 글쓰기는 어느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과거와 꿈들로 물들어 아주 자랑스러워졌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 대해, 나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책쓰기 한 번 한다고 뭐 그리 달라질까 싶은 사람에게 진짜 우리 학생들이 쓴 책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나에 대해, 내 인생에 대해 이렇게 오래 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라는 말이다. 그때 확 와닿는 것이 있었다. 아하, 자서전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적으로 시간을 준 것’이 중요했구나. 학교는 학생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만 가르치면 되는구나. 교과 수업의 이름으로 충분히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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