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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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42면   |  수정 2017-12-01
하나 그리고 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異床同夢, 그와 그녀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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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사이, 핑크빛으로 관객들을 불러 모았던 작품들은 ‘내 사랑’(감독 에이슬링 월쉬), ‘플립’(감독 로브 라이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감독 쓰키카와 쇼) 등 외국 영화들이었다. 비록 이들 모두가 웰메이드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간 러브 스토리에서 보기 어려웠던 캐릭터, 독특한 사랑 고백이 등장한다는 점 등이 호응을 얻었던 이유라고 볼 때, 한국영화가 로맨스에 대한 상상력 혹은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헝가리에서 온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감독 일디코 엔예디)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헝가리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
판타지적 소재와 현실 버무려 나가는 연출방식 흥미



‘마리어’ 박사(알렉상드라 보르벨리)는 ‘엔드레’(게자 모르산이)가 재무이사로 있는 도축장에 품질검사원으로 오게 된다. 두 사람은 어쩐지 서로에게 관심이 가지만 섣불리 가까워지지 못하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츰 깊이 교감한다.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졌지만 인간관계에 서툰 여자 마리어와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건조한 남자 엔드레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판타지적 소재와 현실을 버무려 나가는 연출 방식도 흥미롭다. 가령, 두 남녀가 꿈을 공유한다는 설정, 그들이 꿈속에서 사슴으로 등장하는 장면의 묘사는 판타지 동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신비롭지만 도축장에서 이루어지는 비정한 살육 또한 길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이러한 시각적 대비는 전반적으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영화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요인이면서 원제인 ‘Testrol es lelekrol’(On Body and Soul)이 암시하듯 ‘영혼’이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각자가 갖고 있는 현실적 문제, 즉 ‘몸’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는 서사와도 연결되어 있다.

‘알렉상드라 보르벨리’의 투명한 눈동자와 ‘게자 모르산이’의 묘한 미소가 이 독특한 사랑 이야기에 힘을 실으며 마음을 길게 잡아끈다. ‘토리노의 말’(벨라 타르), ‘사울의 아들’(라즐로 네메스)에 이어 헝가리 영화의 흐름에 촉각을 세우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6분)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버지로 ‘성장’하는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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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키에틸’(크리스토퍼 요너)은 자책과 함께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에 시달린다. 입양한 아들 ‘다니엘’(크리스토페르 베치)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안정적인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니엘은 아빠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기 일쑤다. 고민하던 키에틸은 다니엘을 데리고 그가 태어난 콜롬비아로 간다.

이기심의 가장 나쁜 속성은 자신마저도 속인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인 양, 자신의 욕구를 슬쩍 감춰두고 타인을 설득해 보려는 행위는 가증스럽다. 키에틸은 현지에서 입양을 도와주었던 ‘타보’(말론 모레노)에게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숨긴 채 혼자서는 다니엘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솔직한 심경 대신 다니엘이 생모와 함께 고향에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다. 다니엘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키에틸의 독선적 판단에 타보는 당황한다. 입양을 담당하는 직원도 생모를 만나고 싶다는 키에틸의 숨은 의도를 쉽게 눈치챈 듯하다.


아내가 사고로 죽고 입양한 아들과 떠난 불편한 여행
아릴드 안드레센 감독…콜롬비아의 다양한 모습 선사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감독 아릴드 안드레센)의 서사는 표면적으로 아내, 엄마가 갑자기 부재하게 된 상황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아빠와 아들이 떠난 불편한 여행에 기반하고 있다. 대개의 로드 무비처럼 이 영화에서도 여행 가운데 키에틸과 다니엘이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등장하며, 잔잔히 묘사된다. 그러나 이 부자(父子)의 여정은 보다 사회적인 이슈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에서 오래 곱씹게 되는 것은 콜롬비아에서 불한당으로 변해버린 한 노르웨이 남자다. 키에틸은 다니엘이 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종종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데 대해 부정적으로 말해왔지만, 콜롬비아인들을 낮추어 보고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며 경찰에게까지 막무가내로 대드는 그의 모습은 철들지 않은 아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다니엘의 인성이 생모나 고향에서가 아니라 키에틸의 가정에서 빚어진 것임을 명시한다. 소유욕이나 공격성도 얼마 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외상 때문에, 그래서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키에틸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말을 듣고 이해해 달라는 아이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정적인 북유럽과 대비되는 콜롬비아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구걸하는 이들, 소매치기도 있지만, 거리는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 차 있고 성실한 노동자와 공무원이 있으며, 타보의 가족처럼 이방인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도 있다. 국가 간의 빈부격차로 인한 편견과 갈등의 문제를 ‘입양’이라는 이슈와 결합시킨 이유는 자명하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과 헌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에틸은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 복도를 지나가고 카메라는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마을을 비춘다. 여행의 끝에서 키에틸의 시선은 한 아이에 대한 책임의 영역을 넘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 그러나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마땅히 사랑받고 존중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는 세계로 확장된다.

‘더 오하임 컴퍼니’(2012)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던 ‘아릴드 안드레센’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2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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