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보수 궤멸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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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  발행일 2017-12-01 제23면   |  수정 2017-12-01
[조정래 칼럼] 보수 궤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며 검찰 수사에는 ‘편파적’이라고 주장했다. 의원들 앞에서 격정 토로를 했고 한국당 의원 116명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동정 여론을 구하기도 했다.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대신 ‘캐도 캐도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전 정권의 소위 실세였으니까 뭐 하나라도 캐내서 뒤집어씌워야 한다, 터무니없이 불공정한 정치 보복성 수사에 정상적으로 임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항변하고 있다. 한국당은 일단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한마디로 친박 실세의 호소가 메아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그에게 은전을 입었을 만한 대구경북 ‘진박’ 의원들까지 납작 엎드린 채 응답하지 않는 모습이다.

검찰의 적폐 수사가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사해종횡이고 종횡무진이다. 한국당 김재원 의원 역시 여론조사에 특활비를 쓴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처럼 친박 실세들이 정조준되고 있는 것은 홍준표 대표의 친박 청산과 공교롭게도 같은 흐름을 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섣부른 예단을 하는 건 금물이지만 수사기법과 절차상 무리수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지적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참고인이나 피의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주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건 죽음을 강요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검찰의 이러한 ‘인격살인’은 언급하기조차 무서울 정도지만 그보다 더 큰 고질은 정치편향성이다. 적폐청산이란 미명 아래 핵심 살생부가 작성되고 그에 따른 하명(下命)수사가 5년 주기로 반복된다. 검찰은 팩트만 보고 간다고 하지만 그 시나리오는 ‘팩션’(팩트+픽션)에 가깝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말하지만 지금껏 아름다운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온 나라를 할퀴고 있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만 해도 어느 정권에서나 있어 온 비자금성 예산 아닌가. 영수증이 필요 없으니 ‘특수’란 접두사가 붙은 것이고 필요하니까 예산으로 편성된 것 아닌가. 노무현정부에서는 용처를 기록해두었으니 괜찮다고 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이고,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어불성설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어서야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정권의 ‘내로남불’이고 영원히 갑 속에 든 칼일 뿐이다. 정치검찰의 횡행은 일차적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 탓에 기인하지만 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의 지리멸렬을 주식(主食)으로 한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칼날을 휘둘러대도 야권은 방패막이 역할을 할 명분도 못 찾고 국민적 여론도 업지 못한다. 이에 비해 정부 여당은 일사불란하다. ‘공공기관 가실 분~ 회신 바랍니다.’ 촛불을 등에 업은 문재인정부는 문자 발송으로 당내 공직 희망자를 공개 모집할 정도다. 자신감이 뻗쳐 기고만장하는 경지다. ‘공공기관 가실 분’과 ‘학교 가실 분’ 사이 희망과 절망이 극명하게 교차되는 세태다.

야권 특히 한국당의 무기력과 무능은 정부 여당과 프레임 전쟁에서 완패한 결과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으로 적폐청산 프로그램은 그 속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만 정치보복 논리는 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 개인의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TK 의원들은 더 애처롭다. 난파선 같은 한국당호에 재승선하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으니 한마디로 수장(水葬)되기를 자처하는 것인지,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선장이라면 비장함이라도 있으련만, 각자도생의 분분(紛紛)한 선택이 어지럽다.

대한민국 특히 TK 보수는 새로운 리더와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보수를 궤멸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이대로라면 그런 각본대로 연출될 게 틀림없다. 속수무책, 수수방관의 보수라면 차라리 해산하고 보수의 재구성을 하는 게 옳다.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기운이 나오는 법이다. 그나마 자멸하지 않으려면 폐족(廢族)이라 자칭했던 ‘친노’가 다시 정권을 잡기까지 부활 과정을 복기라도 해보든가. 학습 불능, 결단불가의 친박 폐족으로는 보수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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