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시선과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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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1 07:50  |  수정 2017-12-01 07:50  |  발행일 2017-12-01 제18면
[문화산책] 시선과 고찰
고현석<영화감독>

“의사 ‘제니’는 한밤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진료가 끝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제니’는 소녀의 행적을 직접 찾아 나서는데….”

올해 개봉했던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의 시놉시스이다. 줄거리를 보면 대개 주인공이 범인을 추적하다가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는 스릴러 영화를 기대하겠지만 다르덴 형제는 스릴러의 형식만 가져갈 뿐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제니가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반응에 집중한다. 여러 사람의 무관심이 쌓이고 쌓여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들은 제니처럼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소녀의 죽음을 귀찮아하거나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제니에게 역정을 낸다. 감독은 그렇게 제니가 만나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영화로 재연하고 고발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다르덴 형제의 2002년 작 ‘아들’에는 갓난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직업학교에서 목공을 가르치는 올리비에는 소년원에서 출소한 소년 프란시스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올리비에가 프란시스를 대하는 태도가 미스터리하다.

영화의 중반부에 그 이유가 밝혀지는데, 5년 전 올리비에의 갓난아이를 죽인 소년이 바로 프란시스인 것이다. 프란시스는 올리비에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올리비에는 프란시스를 알아본다. 미스터리가 해소되고 나니 이제부터 서스펜스가 된다. 올리비에는 프란시스와 함께 목공 창고로 가자고 제안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프란시스는 올리비에를 따라나선다. 이 위태롭고 숨 막히는 긴장 끝에 영화는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이 올리비에라면 자신의 자식을 죽인 소년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르덴 형제는 현실 문제에 당면한 소시민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래서 모든 필모그래피는 핸드헬드와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있고 배경음악을 절제하거나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떤 영화보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서스펜스 같은 극적인 장치들을 활용하지만 여느 장르 영화와 다르게 극적인 재미가 목적이 아니라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 활용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내용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형식들을 끌어모아 ‘주제’라는 한 점을 향해 수렴해간다. 그 힘의 동력은 세상을 진단하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과 처방을 위한 깊은 고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언젠가 세상이 영화가 된다면 그 세상은 다르덴 형제가 꿈꾸는 세상이길 바란다.
고현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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