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50+ 세대여, 공부가 희망입니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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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30   |  발행일 2017-11-30 제31면   |  수정 2017-11-30
[영남타워] 50+ 세대여, 공부가 희망입니다
이창호 사회부장

기자 초년병이던 문화부 시절, TV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TV 평(評)’ 때문이었다. 한 주간 각종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비평 기사를 쓰는 게 내 일이었다. 연출 의도가 제대로 살려졌는지, 옥에 티는 없는지…. 웬만큼 신경을 곤두세워 TV를 보지 않고선 제대로 된 평을 쓰기가 어려웠다. 내게 이 ‘훈련’을 시킨 이는 A선배다. 그는 내 기자 인생에서 첫번째 ‘사수’다. 드라마·교양 프로그램 등의 평을 원고지에 써 와 그에게 첨삭을 받았다. 칭찬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이걸 글이라고 쓴 거야. 대체 무슨 눈(시각)으로 드라마를 봤어, 다시 써 와.” 개발새발 쓴 내 기사에 그는 가차없는 질타를 날렸다. 열의 일곱은 그랬다. 내겐 잊을 수 없는 ‘엄한 선배’였다. 선배는 훗날 신문사를 옮겼고, 거기서 25년 넘게 일하다 지난해 말 퇴임했다.

최근 A선배에 관한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후배기자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어렵다는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해 이달 초부터 경북도내 한 지자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 61년생 베이비부머 은퇴자가 스스로 개척한 인생 2막이다. 그가 법·경제학에 내공(內功)을 갖춘 실력자임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기에 사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박학다식하고 총명해 기자 시절에 성씨를 딴 ‘○박사’라는 별호(別號)까지 얻었다.

나이 먹을수록 세월은 더 빨리 흐른다. 대한민국 50대는 그래서 더 우울하다. 우울증 환자 중에서 50대가 가장 많은 것은 이미 굳혀진 통계다. 지긋한 나이에 무슨 우울증이냐고? 태산같은 앞날 근심에도 참다참다가 결국 터져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게 50대 아재들이다. 50대 초반도 은퇴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50대 중·후반은 임박한 은퇴에 가슴이 더 막막하다. 당장엔 직장에서 봉급을 받지만 은퇴 후 뭘로 먹고 살아야 할지 여간 걱정이 아니다.

A선배 인생 2라운드에서 우리네 50대가 곱씹어 볼 만한 힌트를 찾았다. 그 일번은 ‘공부’다. 50대야말로 고3 수험생보다도 더 ‘공부다운 공부’를 해야 할 나이다. 100세 시대, 남은 50년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변곡점에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A선배와 같은 특정 시험 공부만은 아니다. 작가 장석주는 최근 한 라디오 대담에서 “은퇴 후 치킨집 개업도 좋지만, 그 전에 반드시 인문학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문학적 소양은 자기 선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논리적 버팀목을 만들어 은퇴 후 최대 적(敵)인 ‘부화뇌동’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공부 전도사’로 통하는 일본의 와다 히데키도 자신의 책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아서 늙는다”며 공부가 최고의 ‘노화 방지약’이라고 했다.

또 가장 잘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내 꿈이 뭔지도 잊고 가족을 위해 접어야 했던 ‘그 무엇’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청년 때 드러머가 꿈이었다면 드럼연주를 시작해도 좋다. 화가가 목표였다면 붓을 다시 들어도 좋다. 혹자는 “에계~ 돈이 되겠어?”라고 할 게다. 은퇴 선험자들의 조언은 다르다. 잃어버린 꿈과 자아(自我)를 찾는 게 진정한 인생 2막이라고.

동서고금에 장년층을 홀대한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고 한다. 구미(歐美)와 일본에선 일찍부터 은퇴자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 왔다. 이들 나라에선 은퇴자에게만 취업의 길이 열려 있는 직업도 부지기수다. 시쳇말로 ‘국내 도입이 시급한’ 대목이다.

A선배에게 두어번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를 못했다. 지면으로나마 인사를 전한다. “선배, 기자 때 발로 뛰었듯이 ‘발로 뛰는 공무원’ 기대할게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이창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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