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30·<끝>] 대구 최고부잣집 맹견 독살사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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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30   |  발행일 2017-11-30 제29면   |  수정 2017-11-30
수전노의 셰퍼드 죽이고 “조국 위해 돈 써라” 협박장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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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최고부자로 알려진 서병국의 집에 괴한이 침입해 맹견을 해치고 건국사업에 재산을 바치라는 협박장을 꽂아둔 뒤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영남일보 1946년 3월9일자)

예전의 부자들은 개를 유독 좋아했다. 크고 넓은 집의 방범을 개에게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잣집과 덩치 큰 셰퍼드는 어울리는 궁합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구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살았다는 남정(지금의 진골목 일대)의 풍광도 다르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집은 셰퍼드가 지키는 대구의 최고부자로 소문난 서병국의 집이었다. 광복 뒤 첫 봄을 맞은 1946년 3월, 서병국의 집은 탐정소설에나 나올 법한 섬뜩한 일로 입길에 올랐다.


광복 후 경제상황·식량난 맞물려
일제강점기 큰돈 번 부호들 대상
‘건국사업 기부 외면’ 응징 잇따라



‘…서병국씨 댁에는 하룻밤 사이에 누구의 소위인지 알 수 없이 그 집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맹견을 어느새 급살시킨 다음 한 장의 협박장을 예리한 단도로 벽에 꽂아놓고 도주한 사실이 있다. 협박의 내용은 너는 과거 수전노로 이름이 높은 자였거니와 건국도상에 있는 오늘에도 한 푼의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단연코 용서할 수 없으니 빨리 전 재산을 건국사업에 바치지 않는다면….’(영남일보 1946년 3월9일자)

서병국의 집에 정체 모를 누군가가 침입해 하룻밤 사이에 2마리의 맹견을 독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침입 흔적이라고는 개밥그릇 주변에 묻어 있는 흰가루와 단 한 장의 협박장이었다. 서슬이 시퍼런 칼로 꽂아 놓은 협박장의 내용은 간단했다. 일제강점기 때 수전노에서 벗어나 되찾은 조국을 위해 돈을 쓰라는 것이었다. 위협하는 문구의 내용으로 볼 때 일반적인 강도사건과는 확연히 달랐다. 서병국은 그런 일이 일어난 뒤 이재민들에게 벼 300가마니를 기부했다.

‘부자로 이름이 높은 대구에서도 일류부호 서병국씨 댁에서 연이어 발생한 맹견 독살과 예리한 비수의 무서운 협박장 등의 괴이한 사실은 탐정소설의 아슬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수수께끼 같은 화제를 빚어내 일반 부호들의 신경을 괴롭게 하고 있거니와 19일에는 깊은 밤중에만 한해서 맹견을 살해해오던 수단 방법에서 한 걸음 뛰어넘어 백주인 상오 9시 셰퍼드 한 마리로 어느새 독살한 맹견이 생기었다.~’(영남일보 1946년 3월21일)

그 정도의 기부로는 성에 차지 않았을까. 며칠 뒤에는 새로 사온 맹견조차 죽임을 당했다. 서병국이 외출한 사이 벌건 대낮에 맹견을 해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동네 부자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불안에 떨었다. 시간이 지나도 범인조차 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맹견 독살이 이어지자 신문은 ‘탐정소설 같은 괴사실’로 기사 제목을 뽑았다.

광복 직후는 어려운 경제상황과 식량난이 맞물렸다. 그러자 일제강점기 때 큰돈을 벌고도 기부를 하지 않는 부자들이 위협을 당하는 일이 가끔 일어났다. 서병국의 집에서 발생한 맹견 독살과 기부협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병국은 기부협박을 받은 뒤 많은 양의 쌀을 내놨다. 그럼에도 얼마 뒤 쌀 수집에 나선 당국에 50가마니를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만일 서병국이 애초 남모르게 통 큰 기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탐정소설 같은 괴사실’은 ‘탐정소설 같은 기부천사’로 기사 제목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근대골목투어의 문화해설사는 오늘도 대구부자 서병국의 옛집에 이르면 그의 통 큰 선행을 자랑하듯 읊조릴 테고.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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