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닥터마틴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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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40면   |  수정 2017-11-24
워커에 세계 최초로 공기쿠션 밑창을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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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마틴을 즐겨 신었던 스킨헤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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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마틴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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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마틴 러버솔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서서히 시린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부츠를 찾게 된다. 그중에서도 발목을 덮는 길이의 첼시부츠는 발을 따뜻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멋스럽고 활동성이 뛰어나 스타일에 민감한 젊은층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에서 첼시부츠를 내놓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닥터마틴(Dr. Martens)’의 첼시부츠 플로라(Flora)다. 이 부츠는 신발 입구에 신축성이 있는 소재를 사용해 끈을 묶거나 지퍼를 내려야 하는 번거로움없이 착용 가능하며 투박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으로 시크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다친 클라우스 마틴 박사
기존 군화에 ‘러버 솔’ 부착한 게 시초
1960∼70년대 英 펑크록 인기와 함께
자유분방한 문화 대변 브랜드로 인기

노란 박음질·뒤축 로고고리‘1460부츠’
신축성 소재 사용한 ‘첼시부츠 플로라’
클래식한 매력의 브랜드 정체성 지키며
최근엔 과감한 컬러웨이로 제2 전성기



투명한 러버 솔(Rubber Sole)에 노란색 스티치, 그리고 뒤축에 달린 로고 고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닥터마틴은 1901년 벤자민 그릭스와 셉티머스 존스가 영국의 노샘프턴셔 웰러스턴에서 부츠를 제작해 그것을 노동자와 군대에 보급하는 업체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그 일을 수십 년간 지속했는데, 그들의 부츠가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였던 것은 아니었다.

닥터마틴의 트레이드 마크인 러버 솔이 있게 된 것은 1945년 독일 태생의 클라우스 마틴 박사가 자신의 군화를 직접 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다리 부상을 입은 그는 기존의 군화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고심 끝에 자신의 오랜 친구인 허버트 펑크 박사와 함께 독일 공군 비행장에서 폐기된 고무를 사용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공기쿠션 밑창을 개발했다. 그 밑창은 탄력이 좋아 근육과 인대를 자극하면서도 관절을 보호했다. 그들은 1947년 회사를 설립해 획기적인 발명품을 시장에 내놨다. 러버 솔이 부착된 이 신발은 근육의 회복을 촉진하면서도 관절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시장에서는 높은 판매율을 보였으나 패션성은 떨어져 일반 사람들에게는 외면받았다.

시장의 한계를 느낀 그들은 국제 무역 매거진에 광고를 게재하고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했다. 그러던 중 현재의 닥터마틴 소유주인 그릭스 그룹의 회장 빌 그릭스가 그들의 에어 쿠션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하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지금의 닥터마틴만의 특징을 갖게 됐다. 그릭스 일가는 노랑 웰트 스티치, 투톤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엣지 아웃 솔, 그리고 빌 그릭스의 필체로 ‘AirWair with Bouncing Soles’라고 쓰여진 검은색과 노란색 글씨의 힐 루프를 이용한 매력적인 디자인을 했다.

1960년 4월1일, 닥터마틴으로서의 디자인인 내파(NAPPA) 가죽의 체리 레드 컬러 8홀 부츠가 웰러스턴 공장에서 생산됐고, 그 탄생의 날을 표시하고자 제품의 이름을 1460부츠로 명명했다. 처음 몇 년간은 공장 노동자, 경찰, 우체국 직원들이 즐겨 신었으나 이 모델은 점점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그 시리즈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1961년에는 3홀 슈즈인 1961을 선보였다.

이렇게 노동자 계층이나 중년에게 사랑받던 1460부츠가 젊은 층의 패션아이템으로 호응을 받게 된 것은 서인도 제도의 팝음악(SKA)을 사랑하는 다문화 스킨헤드들에게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전설적인 밴드 ‘The Who’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드가 무대에 신고 나와 젊은 층에서 유행하게 됐다. 이에 닥터마틴은 1960년대 후반부터 거리문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영국 펑크록 그룹과 뉴웨이브 뮤지션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시장에 진출해 호응을 얻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그런지가 세계적인 주류 음악이 되면서 닥터마틴 또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지와 브리티시팝 음악인들 사이에서 1460부츠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고, 닥터마틴 역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국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대변하는 브랜드가 됐다.

닥터마틴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선보였다. 1990년대 맥 마틴 타탄이라 불리는 닥터마틴의 고유 타탄체크인 시리즈를 만들었고, 에어웨어(AirWair)라는 이름으로 기존 오리지널 1460스타일에서 벗어난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제품을 출시하며 닥터마틴을 대표하는 반항적인 이미지가 아닌 클래식한 스쿨화로도 사랑을 받았다.

2001년 매출이 급감하게 된 닥터마틴은 한 공장을 제외한 영국의 모든 공장이 문을 닫을 만큼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03년 지미추, 비비안 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등과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1460부츠를 커스터마이징해 새로운 스타일로 선보이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해 2007년에는 다시 유명인과 대중에게 인기를 끌며 위기를 극복했다. 영국의 자유분방한 감성과 과감한 컬러웨이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다양한 소재와 컬러감으로 늘 새로운 도전을 마다않는 닥터마틴은 영국에서 영향력 있는 신발 브랜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마니아층이 두껍다. 세련되지만 가볍지 않은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요인이다. 또 그들은 단종된 신발도 소비자들의 요청으로 재출시할 만큼 소비자를 위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닥터마틴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연령층에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꾸준히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닥터마틴은 지금까지도 초창기의 제화법이나 디자인을 지켜내고 있는데, 유행의 흐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패션계의 특성상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클래식한 매력으로 브랜드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2010년 50주년을 맞이한 닥터마틴이 “모든 사람은 그들의 첫 닥터마틴을 기억한다”라고 했던 그들의 ‘처음 그리고 영원히’라는 광고 캠페인의 슬로건처럼 소비자들에게 영원이 기억되길 바란다. 닥터마틴의 다가올 60주년, 70주년, 그리고 100주년도 기대가 된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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