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힘내라! 포항수험생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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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3   |  발행일 2017-11-23 제31면   |  수정 2017-11-23
[영남타워] 힘내라! 포항수험생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노랫말처럼 오늘은 필자의 막내아들 수능시험일이다. 큰아이가 재수를 한 바람에 3년 내리 수험생 아버지가 돼서 그런지 가사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두세번 도전하는 수험생도 있겠지만, 이번 수능생 대부분은 20세기 마지막 해에 출생한 아이들로 이른바 1999년생 ‘세기말키즈’다. 이들은 화려한 주목을 받았던 새천년생에 비해 “아홉수가 3개나 된다”느니 하며 태어날 때부터 차별 아닌 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1998년생과 함께 유아시절 부모가 IMF 외환위기로 힘들었을 때 출생한 공통점이 있다.

학교에 진학해서도 다른 학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울했다. 초등 4학년 땐 사스(신종플루)로, 중3 땐 세월호사태로, 고1 때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수학여행을 못 가거나 운동회, 소풍 등이 취소됐다. 또 입시제도가 여러 차례 바뀌는 바람에 7차 교육과정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했다. 건국 이래 최장 연휴였던 올 추석 땐 입시공부로 쉴 수 없었다는 농담 섞인 이야기도 나왔다. 절정은 지난 15일 오후 발생한 포항지진으로 수능시험이 연기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바꾼 세기말 촛불키즈가 수능시험일까지 연기시킨 괴력을 선보였다는 말이 나돌았다. 불리한 환경과 조건도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이다.

이런 가운데 지진공포로 힘들었을 포항지역 6천명의 수험생을 위한 정부의 수능시험 연기 조치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지난 세월호사태 때처럼 허둥대지 않았으며 판단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이튿날수능시험일이었던 16일 오전 9시2분에 발생한 규모 3.6의 지진으로 국민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았던가.

예수도 “100마리의 양들 중 1마리를 잃어버리면 마땅히 99마리를 산에 놔두고 1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전국의 수험생 60만명 중 포항지역 수험생 6천명은 잃어버릴 뻔했던 1마리 양이나 진배없다. 혼자 가면 조금 빨리 갈 수 있어도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이는 효율성과 다수의 이익에만 길들여진 이들을 향해 ‘사람이 먼저’라는 소중한 가치를 체득하게 했다.

사정이 이럴진대, 지진으로 생긴 포항시민과 포항수험생의 생채기를 덧나게 하는 발언들은 심히 유감이다. ‘포항사람들이 패악질해 땅이 빡친 결과’ ‘종교인과세 때문에 지진이 났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하늘의 엄중한 경고와 천심’이니 하는 말들은 지진에 대한 ‘제 논에 물 대기식’ 견강부회다. 여진 공포로 불안한 데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대피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포항시민에게 내뱉을 말이 아니다.

이참에 기를 쓰고 진학하는 ‘묻지마 대학진학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여론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자소서니 학종이니, 수시니 정시니 하는 복잡다단한 시험제도를 간편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SAT 논리력 및 과목별 시험을 1년에 7차례 치러 수험생이 그 가운데 최고 점수 결과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수능시험이 ‘일기일회(一期一會)’가 돼선 안 된다. 이번 지진은 그런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또다른 소수자도 배려해야 한다. ‘고졸이 차별받지 않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평생복지제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오죽하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이 나올까. 교육은 이미 계층 이동 수단이 아니라 부의 세습 수단이 돼버린 지 오래다. 지난 10여 년간 공교육은 퇴보했다. 사교육으로 부모의 허리는 더 휘어졌으며 아이들은 입시로 더 골병이 들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지진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수험생 모두가 시험을 잘 치르길 기원한다.

특별히 포항수험생들이여 힘내라!

박진관 (기획취재부장·사람&뉴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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