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대구와 한글 이야기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1-21 08:08  |  수정 2017-11-21 08:08  |  발행일 2017-11-21 제25면
[문화산책] 대구와 한글 이야기
제갈덕주 (경북대 한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대구는 한글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서울을 제외하고 광역시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대구만큼 한글 관련 콘텐츠를 가진 도시는 드물다. 그런데 정작 대구의 한글 유산에 관한 관심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대구는 한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최초 영인지다. 1940년 안동에서 해례본이 처음 발견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상황 속에서 국보급 유산을 함부로 공개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대구의 한 출판사인 창란각을 경영하던 이청(李靑)이라는 분에 의해 해례본과 언해본을 묶은 ‘합부 훈민정음’이 간행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해례본의 최초 영인은 서울의 통문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학계 통설이었다. 그런데 ‘합부 훈민정음’이 소개되면서 대구가 최초의 영인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또 다사읍에는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환산 이윤재 선생의 묘소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지인 ‘한글’을 편집·발행한 환산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1943년 함흥감옥에서 옥사했다. 선생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화장돼 경기도 광주군 야산에 매장되어 있었다.

광복 직후 조선어학회에서 그 사실을 알고 묘를 이장하여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그런데 유가족들의 경제난으로 인해 묘가 타인에게 넘어갔고, 6·25전쟁 중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구로 이장되었다. 그마저도 부지가 타인에게 매도돼 방치되다가 한글학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2013년 9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이장 과정에서도 중요한 한글유산의 하나인 선생의 한글 묘비는 다사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김해문화원에서 김해동부보훈지청과 함께 묘비를 김해시로 옮겨 안치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생의 묘비를 김해시에 내어준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밖에도 세종대왕과 서침에 얽힌 달성공원 이야기, 지석영 선생과 동학 이야기, 법무장관을 지낸 애산 이인 이야기, 국어사 연구 자료인 무술오작비와 현풍곽씨언간 이야기 등이 모두 대구와 관련되어 있다. 대구시가 2021년까지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구간송미술관 또한 한글 문화유산과 관련되어 있다. 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분명 훈민정음 해례본 관람을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구에는 국어문화 진흥 조례조차 한 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부디 내년에는 조례제정부터 한글 문화유산의 정비·관리를 위한 사업 수립에 이르기까지 대구시와 시의회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갈덕주 (경북대 한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