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통장에서 용 난다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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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0   |  발행일 2017-11-20 제31면   |  수정 2017-11-20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다. 변변하지 못한 집안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뜻이지만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그저 오래된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에는 ‘통장에서 용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죽했으면 ‘사교육비와 대학 학비를 모아서 중장비 두 대를 사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사교육을 거쳐 좋은 대학에 보내도 직장 얻기가 어렵기에 중장비를 임대하거나 직접 운전하는 것이 오히려 미래가 밝다는 의미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백수가 되는 시대에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풍자했다.

우리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신분과 경제적 상승에는 자녀교육이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여겨왔다.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교육에 비례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쏟아부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녀들의 교육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변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에는 교육투자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재학생 70%가 고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 고소득층은 올해 기준으로 월 소득이 804만원 이상인 소득분위 8~10분위 그룹이다. 지난달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6~2017년 로스쿨 재학생 소득분위 분석 결과다. 올해 로스쿨 재학생의 고소득층 비율도 지난해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사립대 로스쿨은 고소득층이 70%를 차지했고 국립대는 64.5%가 고소득층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명문대학 로스쿨의 고소득층 비율은 지방대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올해 수도권 로스쿨의 고소득층 비율은 72.5%였지만 지방 로스쿨은 61.9%에 그쳤다. 고소득층 자녀들의 로스쿨 재학생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이쯤 되면 통장에서 용이 나는 금수저 로스쿨 세상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법조인의 관문인 로스쿨의 연간 수업료는 2천만원에 이른다. 중소기업 근로자 연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듯이 서민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믿음도 완전히 깨졌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고 통장에서 용이 나는 현실이 두려울 뿐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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