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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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0 07:56  |  수정 2017-11-20 07:56  |  발행일 2017-11-20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포항지진으로 수능시험이 한 주 연기되자 상당수의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일부 학생들은 컨디션 조절 난조로 정신적인 공황 상태와 무력감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증세는 수험생 자신의 탓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수능시험을 국가적 중대사로 연일 크게 보도하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 탓도 크다.

프로이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사냥을 나갔다가 깊은 산골짜기에 다다랐다. 썩은 나무다리가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다른 길을 찾고 있는데 성미가 급한 친구는 그 다리로 건너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고 물에 빠졌다. “흘러내리는 모래에 파묻혀 죽겠어, 제발 살려줘”라고 친구가 외쳤다. 비스마르크는 친구를 구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다. “내가 늪 속에 뛰어들면 같이 죽어. 너는 지금 죽을 수밖에 없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네 머리를 쏴야겠어. 좀 가만히 있어. 제대로 겨냥 할 수가 없어.”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며 허우적대던 친구는 비스마르크의 말과 태도에 격분했다. “그래, 두고 보자”라고 말하며 사생결단의 몸부림으로 그 수렁에서 가장자리로 빠져 나왔다. 그때서야 손을 잡고 당겨주며 비스마르크가 말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네 머리통이 아니고, 포기하려는 네 마음에 총을 겨눈 거야. 내가 늪 속에 뛰어들었다면 같이 죽었을 거야.” 친구는 “너의 침착함이 나를 구했구나”라며 놀라워했다.

수능시험·취직시험 등은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수능시험 날이라고 온 나라가 들썩일 필요가 없다. 수험생과 학부모 등 이해당사자들만 당일 조용히 침착하게 움직이면 된다. 나머지 사람들은 수능시험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게 좋다. 나는 그런 날이 올 때 우리 사회가 비로소 정상적인 상태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한 번 잘 쳐서 명문대에 입학하면 죽을 때까지 기득권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다.

아는 지인의 자녀가 시험 치면 우리는 초콜릿, 엿, 찹쌀떡 등을 주며 요란하고 성가시게 격려한다.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버릴 수가 없다. 보관하자니 마땅한 공간도 없다. 이런 관심이 일부 수험생 가정에서는 고통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수능시험 날 아침 후배들이 고사장 앞에서 교가를 제창하고 박수를 치며 입실하는 선배들을 떠들썩하게 응원한다. 언론은 그 광경이 미풍양속인 양 자세히 보도한다. 이 터무니없는 소란은 후배의 도리이자 미덕으로 간주된다. 그 과정을 거친 많은 사람들은 그런 푸닥거리가 격려와는 거리가 멀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결전의 의지를 다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한 번 시험으로 나머지 모든 것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죽는 날까지 배우고 공부하며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험생이 도전적인 자세로 침착하게 시험을 칠 수 있도록 그 소용돌이 밖에서 조용히 마음을 모아주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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