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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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8   |  발행일 2017-11-18 제16면   |  수정 2017-11-18
같은 자극도 시대따라 다르게 해석
감정억제 명분 사라지면서 분출되며
‘감정 코칭’‘감정 노동’등도 주목
감정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감정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감정 있습니까?//몸문화연구소 지음/ 은행나무/ 296쪽/ 1만5천원

최근 한국 사회는 분노와 혐오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완벽하게만 보이던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국정 농단, 구제역 등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와 국정 농단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구제역은 가축 살처분으로 인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삶의 기본 조건을 뒤흔들어놓았다.

감정은 개인의 심리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 정치적인 감정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풀어낸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소속의 다양한 인문학자들은 감정을 ‘외부의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으로 정의한다. 같은 자극이라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게 재해석되고, 감정 표현을 탐구하면 거기서 시대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 표현을 연구하기 위해 이들은 사회 현상으로 일어난 여러 감정을 선택했다. 여기서 한국 사회를 설명해주는 단어는 연애 감정, 혐오, 시기심, 수치심, 공포, 분노, 애도(우울)다.

3장 ‘낭만적 사랑 따위는 없어’에는 소설가 김운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작품을 소개하며 낭만적 사랑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낭만적 사랑은 ‘환상’이라며, 사랑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소통관계다. 사랑을 발동시키는 에너지인 감정 자체와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의 소통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 배려, 헌신, 용기, 절제부터 결별의 윤리까지 포함하는 소통의 윤리적 관계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뜨거운 주제는 혐오와 시기심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문제적인 감정이다. 4장 ‘혐오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니’는 혐오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외국인이 김치를 보고 혐오감을 느끼다가도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것도 예가 된다. 본능적인 냄새보다도 그것과 관련된 지식, 소문을 혐오감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5장 ‘고통스러운 질투, 존재의 시기심’에서 다루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기서는 원하는 대상을 놓고 경쟁하는 질투가 아닌, 타자가 향유하는 것에 대한 시기심에 주목한다. 내가 누릴 수 없는 행복을 타인이 누릴 때 나타나는 상대적인 감정이다. 영화 ‘토토의 천국’에 나오는 토토는 부잣집에 사는 친구 알프레드와 산부인과에서 바뀌었다고 믿는다. 그에게는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와 멋진 누나가 가장 큰 기쁨이다.

책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감정 코칭, 감정 방어, 감정 노동 등에 대한 논의도 펼쳐진다. 과거와 달리 감정을 억제할 명분이 사라지면서 감정 문제가 분출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참으면 복이 온다’라는 윤리적 명제도 ‘참으면 암이 된다’라는 의학적 명제로 전환됐다. 이전 세대 부모들이 아이들의 감정을 인정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강요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의 감정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 않도록 한계를 지어주는 ‘감정 코칭’으로 바뀌었다.

책에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대상일까.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는 11세 소녀 라일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위기를 겪을 때 내면을 튼튼하게 재구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오히려 문제의 발생 지점을 명확히 하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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