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로마서 8:37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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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7   |  발행일 2017-11-17 제42면   |  수정 2017-11-17
하나 그리고 둘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가족이란 무엇인가


20171117

‘토모’(가키하라 린카)의 엄마 ‘히로미’(미무라)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다. 토모의 외할머니가 유독 그녀에게 엄격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성격이 잘 맞지 않는 엄마를 일찍 떠나 토모를 낳고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히로미는 자주 딸을 남동생에게 맡긴 채 사라지곤 한다. 철없는 엄마 덕분에 열 두 살의 토모는 삼시 세 끼 삼각김밥을 사 먹으며 또래보다 빨리 어른스러워졌지만 때로 애정 결핍으로 인한 공격성도 보인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쌓여 있는 분노와 외로움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그녀 앞에 ‘린코’(이쿠타 도마)가 나타난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감독 오기가미 나오코)는 일차적으로 토모가 외삼촌의 애인 린코와 만나게 되면서 성소수자들을 이해하고, 교감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트랜스젠더인 린코는 히로미가 토모에게 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통해 토모의 마음을 열어간다. 그것은 곧 그녀가 토모에게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도시락을 싸주고, 머리를 묶어주고, 종이컵 전화기로 비밀스러운 얘기도 나누면서 두 사람은 토모의 외삼촌이자 린코의 애인인 ‘마키오’(기리타니 겐타)와 함께 이상적인 대안 가족을 이룬다. 트랜스젠더와 아이들을 무조건 떼어놓으려 하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영화는 히로미와 린코 중 누가 더 토모에게 필요한 사람인가를 묻는다. 동물적으로 바꿔 말하면, 삼각 김밥과 도시락 중 소녀에게 더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카모메 식당’ ‘안경’ 日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신작
주인공 소녀 시선서 性소수자 향한 편견 문제 다뤄
뜨개질 장면에 영화 핵심 메시지 담아…깊고 큰 울림



이러한 주제를 유연하게 다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뜨개질’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확장시킨다. 린코는 속상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뜨개질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그녀는 남근 모양의 주머니를 108개 만들어 태우는 개인적인 의례를 끝냄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 토모와 마키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는데, 특히 토모는 책임감 없는 엄마와 둘이 산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소녀로서 린코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동시에 뜨개질을 통해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자 한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는 장면은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라는 제목의 출처이자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성스럽게 뜨개질을 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을 잊고, 화를 참아낸다. 린코의 의례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토모도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된다.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 ‘토일렛’(2010),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등에서 다양한 관계 안의 소통과 상처의 회복을 개성 있는 스타일로 그려냄으로써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좀 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린다. 특유의 소소한 유머는 없지만 맛이 깊고 울림이 크다. 뜨개질하는 린코와 토모와 마키오처럼 그녀 또한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간절한 심정이었음이 전해진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의 문제와 소녀의 내적 성숙이라는 테마가 튼튼하게 ‘엮여’ 있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7분)


★로마서 8:37
부패한 교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2017111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장 37절/ 개역개정)

‘로마서 8:37’(감독 신연식)은 부패한 교회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썩어 문드러져서 보기 흉한 곳을 구석구석 적나라하게 비춘다. 처음에는 ‘부순 교회’ 담임 목사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강요섭’(서동갑) 목사측과 ‘박강길’(김종구) 목사측의 싸움을 다룸으로써 기업 혹은 정치판과 다름없는 교회의 실상을 묘사하는가 싶더니 이야기가 여성도들에 대한 강요섭 목사의 범죄 행위로 흘러가면서 비판의 시선은 더욱 거칠어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요섭 목사의 죄를 묵인하고 덮어주려는 세력이 회개와 쇄신의 기회마저 앗아가는 종결부는 더욱 암담하다. 뉴스에서 가끔 보아왔던 교계의 악한 면면들인데도 새삼 충격적이다. 영화의 제목이 지목하는 구절이 성도의 승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어쩌면 그럴지도. 이렇게 정직하고 날카로운 영화가 계속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두 목사의 추잡한 싸움 통해 교회 비리·모순 고발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기시감…신연식 감독 作



그 희망의 불씨는 영화의 내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안기섭’(이현호)에게서 발견된다. 끝까지 요섭을 믿고 보좌해주려던 그는 요섭이 여성도들을 폭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통을 등진 채 자신의 권력 보존에만 힘쓰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초반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내를 설득하던 기섭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이 요구하는 ‘거짓화합’과 ‘거짓평화’를 배척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통 속에서 눈물로 기도한다. 그것은 그가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니라 올바른 신앙을 통해 로마서 8장 37절이 말하는 것처럼 창조주로부터 모든 유혹과 핍박을 이길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키우던 고양이가 자신이 준 과자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기섭의 딸은 흐느끼며 아빠에게 묻는다. “내가 사랑해서 그런 건데 내가 죽일 수도 있어?” 교회뿐 아니라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존경받던 리더의 들춰진 허물을 다시 덮으려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돌아볼 때 곱씹어 봐야 할 질문이다. 134분의 러닝타임을 흡입력 있게 끌어가는 연출에서 신연식 감독의 노련함과 영리함이 빛난다. 성찰과 변화를 갈구하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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