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맛테크’ 시대

  • 이춘호
  • |
  • 입력 2017-11-17   |  발행일 2017-11-17 제41면   |  수정 2017-11-17
‘민낯’의 식재료 맛이 그립다
20171117
예전에는 음식이 맛있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냥 ‘간이 맞다’고 했다. 그런데 화학조미료와 설탕 등의 등장으로 인해 전국은 획일화된 감칠맛에 최면이 걸려 버렸다. 예전 간의 원천이었던 간장과 된장이 든 독이 요즘은 더없이 그립다.
20171117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각종 소스·양념·향신료.

바야흐로 ‘맛테크’ 시대로 진입한 것 같다. 맛도 재테크의 한 수단이 된 것이다. 맛은 이제 새로운 ‘욕망의 상징’. 맛을 전도하는 셰프들은 이제 오피니언리더다. 유학파 오너셰프는 인기 1순위. 이 밖에 미식가의 안목을 가진 여행작가, 전통음식 연구가, 사찰음식 연구가, 약선요리 연구가, 자연치유 연구가 등도 맛테크 세상에 신흥교주 못지않은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요리는 이제 단순히 식품학의 한 분과가 아니다. 문화예술의 아이콘이다. SBS로 데뷔한 방랑식객 산당 임지호. 그는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온갖 제철 식재료를 현장에서 채취한 뒤 그 자리에서 요리해서 감각있게 플레이팅해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요리미학을 회화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놓았다. 황교익과 백종원은 한국 쿡방의 양대 스타. 농민신문 기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황교익은 스스로 맛칼럼니스트라고 선언했다. 그는 국내 사철 식재료 정보를 누구보다 폭넓게 알고 있다. 백종원은 푸드마케팅의 귀재. 셰프의 영역에 밀장돼 있던 요리기술을 국민대방출해버렸다. 혼밥 세상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그는 집밥 돌풍에 이어 요즘은 ‘푸드트럭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다.

여기도 맛, 저기도 맛. 정말 맛이 뭐지?

식재료에 덧입혀진 화학조미료·설탕
전국이 획일화·양산된 감칠맛에 중독
범람하는 요리에 천편일률 ‘맛의 빈곤’

장독 간장·된장 대신 부엌 점령 양념류
고유의 맛 스펙트럼 굴절시키며 위세
프랜차이즈 확대도 미각 마비에 한몫


◆ 요리는 문화예술의 상징

맛이 꼭 ‘주술사’ 같다. 입만 뻥긋하면 ‘맛’을 조건반사적으로 난사한다. 안타까운 건 음식을 오감으로 품는 게 아니란 사실. 혀에 산재한 미뢰(Taste bud)에 와닿는 미감의 친밀도에 의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구분해버린다. ‘맛있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확신해 버리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어떻게 맛있는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우린 역사상 가장 달콤하고 감미로운 음식을 접하게 됐다. 식품의학자는 “맛있는 음식이야말로 가장 나쁜 음식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로 빵과 과자, 라면류,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등을 겨냥한 것이다.

모든 음식을 맛있다와 맛없다로 규정해버린다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맛도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 푸드블로거가 ‘맛없는 식당’이라고 낙인찍는 바람에 영업에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맛있다와 맛없다, 그 두 흐름이 마치 태극기와 촛불처럼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고 있다. 맛에 광분하는 세상. 그 집단의식 속에는 흉측한 ‘저격수’가 도사리고 있다. 세인의 미관(味觀)을 왜곡시키고 최면 걸기까지 하는 바로 그놈을 우린 직시해야 된다.

◆ 예전 양반들은 맛을 따지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음식물은 저마다 고유한 맛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서양의 학자들은 그 맛을 크게 5갈래로 분류했다. 달다·짜다·쓰다·시다·감미롭다. 맵다는 혀의 미뢰가 감지하는 게 아니라 뇌가 느끼는 일종의 통증. 그건 맛이 아니다. 독감에 걸리면 일시에 혀의 기능이 추락한다. 입맛이 증발해버린다. 그 어떤 음식을 봐도 먹고 싶은 맘이 안 생긴다. 건강해야 미각이 살아나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 혀는 우리의 귀처럼 감지할 수 있는 미감의 범주가 있다. 그 범주를 학자들이 5가지로 규격화해 놓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경계선상의 맛은 의외로 넓다. 고감도 미식가만이 그런 맛을 언어로 표현해낸다. 가령 짭조름하다, 밍밍하다, 새콤달콤하다 등은 어느 영역에 속하는 걸까?

전라도 토박이는 제대로 된 맛을 가진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는 말 대신 ‘게미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남도의 맛은 바로 ‘게미’로 정리된다. 우리가 잘 끓인 탕·국류를 먹을 때 탄성으로 나오는 시원하다, 깔끔하다 등과도 차이가 있다. 요즘 획일적으로 사용하는 ‘감칠맛 있다’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퀴퀴하고 쿰쿰한 홍어와 삭힌 젓갈, 거기서 느껴지는 곰삭은 맛, 그걸 ‘게미’로 압축시켰다.

예전에는 잘 된 음식을 ‘간이 맞다’로 인정해줬다. 간이 맞다와 감칠맛이 있다는 천양지차. 예전 반가에선 ‘맛있다’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양반은 특히나 맛을 논하지 않았다. 맛난 걸 찾아다니는 걸 천박의 극치로 봤다. 식당이 없던 시절이라 각기 자기 집의 간에 길들여져 살았다.

그때는 ‘간이 맞다’, 그 한 말로 음식평가를 끝냈다. 그 간은 단맛보다 짠맛에서 비롯된다. 좋은 천일염, 그것도 3년 이상 간수 뺀 걸 최고로 쳤다. 그 소금에서 간장·된장이 나왔다. 한식의 맛은 바로 소금간이었다. 간 맞추는 건 집안마다 지역마다 달랐다. 그래서 향토색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존했던 팔도음식의 간을 획일화된 감칠맛이 축출해버렸다.

◆감칠맛에 의해 축출된 우리의 간

이젠 감미로워야 ‘맛있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과연 감미로운 맛의 정체는 뭘까? 바로 식품의학자에 의해 제5의 맛으로 명명된 ‘우마미(UMAMI)’다. 이 맛은 일본에 의해서 발견된다. 우마미는 우마이(맛있는)와 미(맛)의 합성어. 진한 맛, 깊은 맛, 구수한 맛, 감칠맛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맛은 서양권보다 동양권 요리에서 더 강조된다. 다시마 국물 외에도 가쓰오부시, 멸치국물, 고기국물, 표고버섯, 간장 등에서 노출되는 맛이다. 다시마 육수를 졸이고 졸이면 마지막에 분말이 남는다. 이게 정제된 미원의 일종이다. 그 분말을 음식에 첨가하면 감칠맛이 형성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혁명적인 맛이다. 1996년 미국 마이애미대 연구팀에 의해 우리 혀 가운데 이 맛을 감지하는 미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감칠맛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이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결합시켜 대량 생산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L-글루탐산나트륨(일명 MSG)’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학조미료의 대명사 ‘미원’이다.

1908년 도쿄대 화공학과 교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가 다시마두부전골육수를 정제시켜 핵심 성분을 추출했고 나중에 ‘아지노모도’란 이름으로 출시된다. 특히 선조들은 이 맛에 깊이 빠졌다. 일제강점기 냉면·불고기 등에 없어서는 안될 꿈의 조미료로 사랑받게 된다. 이후 1956년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 공장에서 최초의 국산조미료 미원을 생산한다. 현재 대상 청정원이 제조처. 미원이 독보적인 인기를 끌던 1963년,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CJ제일제당의 ‘미풍’. 그해 미원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일깨워준 국민간식 ‘라면’까지 등장한다. 미원은 약방의 ‘감초’ 같았다. 모든 음식에 다 투하됐다. 한식은 미원의 위세에 굴복하게 된다. 팔도의 맛이 다 비슷해져간다. 그때부터 우리의 입맛은 철저하게 미원맛에 길들여진다. 그 유전자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대박 난 식당은 어김없이 미원을 앞세웠다. 전통한식엔 미원 출시일이 ‘경술국치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1953년 제일제당에 의해 대중화된 ‘설탕’까지 가세한다. 간을 중시하던 기존 한식밥상은 더 치명상을 입게 된다. 당시 미원 관련 광고는 더 가관이었다. 그 어떤 음식에 넣어도 천국의 맛을 낸다고 홍보했다. 심지어 휴대용 미원통까지 등장했다.

◆감칠맛 양산의 주범 프랜차이즈

이 기계적 맛을 확대 재생산한 게 바로 ‘프랜차이즈’. 1977년 서울 신세계백화점에 입성한 림스치킨이 국내 첫 프랜차이즈다. 이후 국내 브랜드로는 1979년 롯데리아, 난다랑 등이 첫 프랜차이즈로 기록된다. 이젠 가공식품 천국이다. 대형할인매장에 가보라. 거기에 하늘의 별만큼 많은 가공식품이 있다. 특히 화학조미료, 소스, 향신료, 양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기자도 이번 기사 관련 사진을 찍기 위해 부엌에 있는 각종 양념류를 다 끄집어내보니 얼추 30여 가지가 됐다. 이젠 웬만한 양식당에서는 며칠 걸려 고생해야 완성되는 양식 소스의 기본인 ‘스톡’을 미리 장만하지 않는다. 식품점에서 구입한 걸 사용한다. 셰프들이 조리보다 조립에 더 능해져가고 있다. 냉면집에서도 봉지육수를 당연시한다. 사람들은 자연산보다 봉지육수에 더 엄지척한다. 그러니 수제음식은 단가 때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추어탕, 육개장, 곰탕 등 이제 웬만한 한식 메뉴는 진공포장된 ‘레토르트 식품(Retort food)’으로 팔리고 있다.

이젠 한술 더 떠 맛세상을 넘어 ‘멋세상’으로 넘어간다. 바로 ‘소문맛’이다. 이 흐름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이 주도한다. 요즘 대세는 해시태크해서 관련 이미지를 맘껏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젊은이들은 식탁에 앉자마자 휴대전화로 인증샷부터 찍는다. 일단 식당 외관이 자기와 맞아야 하고 다음은 분위기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하고 독특하면서도 재밌어야 한다. 주인도 약간 우주에서 온 듯한 캐릭터면 금상첨화. 그게 다 맞은 이후에야 맛을 따진다. 음식을 위해 식당에 가는 게 아니다. 특정식당 때문에 들러리로 먹는 게 음식인 세상이다. 건강은 뒷전이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는 이상 맛과 멋으로 음식을 소비가 아니라 ‘사치’한다. 이러다가 후반부 삶을 병원에서 탕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