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더좋은아빠연구소 천경진 소장

  • 박진관
  • |
  • 입력 2017-11-14   |  발행일 2017-11-14 제29면   |  수정 2017-11-14
“지진모자 소개했지만 대부분이 무관심했죠”
지난해 경주지진 겪고 일본行
파편 막아주는 방재모자 발견
크기 줄이고 방염처리 등 개량
대구시 등 극히 일부에만 공급
20171114
더(The)좋은아빠연구소 천경진 소장이 자체 제작한 지진방재모자를 쓴 채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예방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좋은아빠연구소’가 있어 ‘더(The)좋은아빠연구소’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천경진씨(36)는 지난해 9월12일 발생한 경주 지진 때문에 이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가 경험한 지진은 보통 사람이 체감한 것보다 특별(?)하다.

“직장동료와 회식을 하는데 지진이 발생했어요. 가족이 걱정돼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불통인 거예요. ‘먼저 가야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집(대구 북구)으로 갔습니다. 귀가 도중 마트에 들러 가스용품과 생수, 라면 한 박스를 구입했지요. 아파트 이웃들이 공터로 몰려나와 있더군요. 가족을 찾아 차에 태우고 집 인근 칠곡 경북대병원 옆 개활지로 갔습니다.”

지난해 경주지진 겪고 일본行
파편 막아주는 방재모자 발견
크기 줄이고 방염처리 등 개량
대구시 등 극히 일부에만 공급


그는 지진 발생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그곳에서 승용차 안에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전방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 재난 관련 군수과장을 했어요. 그때 숙지한 안전매뉴얼에 따른 행동요령을 그대로 실행한거죠.” (웃음)

천 소장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 다음 날 인터넷을 뒤져 지진 관련 안전용품을 검색했다. 하지만 공사장의 안전모와 손전등 같은 게 고작이었다. 5일 후 그는 지진 관련 안전용품을 알아보기 위해 무작정 일본 오사카로 갔다.

“한 한인학교(금강학원)를 찾아 갔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휴무였는데, 당직자에게 지진 관련 매뉴얼에 대해 물어봤죠. 일본의 학교에선 지진이 일어날 경우 저학년은 고학년과 짝을 맺고 급히 대피로를 따라 피신장소로 갈 수 있게 했더군요. 담당 관리교사가 있고 구호품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어요.”

그는 오사카 시내에 있는 한 팬시점에 들러 지진용품을 찾았다.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지진방재모자, 일명 ‘지진모자’였다.

“가벼운 천과 솜으로 만든 투구모양 모자였습니다. 어깨까지 덮을 수 있는 이 모자는 일본의 거의 모든 학교가 필수용품으로 구비하고 있답니다. 지진 발생 때 책과 신발주머니 같은 것을 머리에 이고 교실을 탈출할 경우 손이 부자유스럽고 전등·타일 등 파편이 얼굴에 튀어 부상 우려가 있는데, 지진모자는 그러한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진모자 두 개를 사서 귀국한 다음 아이에게 씌워보니 너무 컸다. 솜과 천을 분리하고 서문시장에서 원단을 구입해 동네 수선집에 가서 샘플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 제품에는 모자 바깥 부분이 방염처리가 안 돼 있어 FITI시험연구원으로 갔다. 거기서 안전 및 신체에 무해하다는 KC인증을 받아 다시 봉제공장에 의뢰해 1천개를 제작·출시했다.

“인터넷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전단을 만들어 경주·울산지역의 유아원과 유치원을 찾아다니며 지진모자를 소개했는데 다들 시큰둥하더군요. 경북도교육청·경북사립유치원연합회도 방문했으나 관심이 없었어요. 결국 경주지역 유치원 한 곳과 부경대 부설 유치원에 100개만 판매하고 나머지는 재고로 남았어요.”

그가 실의에 빠져 있던 중 지난달 말 대구시청 안전재난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 1일 재난대응안전훈련을 하는데 100개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하더군요. 재고가 남아 있어 3천원을 할인해 1만5천원에 100개를 팔았지요. 지진모자에는 이름, 연락처, 혈액형을 쓰게 돼 있어요.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메모리칩이 필요한데 그러면 단가가 비싸지죠.”

천 소장은 대구 북구에서 키즈카페(로프로프)를 운영하고 있다. 항상 아이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지진모자를 수입해 자체 제작으로 업그레이드시켰는데 손해만 봤다.

“제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더 안전한 나라에 살게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한 게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니까요.”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