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

  • 최은지
  • |
  • 입력 2017-11-13 08:01  |  수정 2017-11-13 08:01  |  발행일 2017-11-13 제18면
“피부색 달라 상처받은 친구들에게 따뜻한 손 내밀어요”
“다문화라는 이유로 겪는 차별·아픔
곪은 상처 이겨내는 것 쉽지 않아
꿈 잃지 않도록 사랑으로 보듬어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대구향교에서 결혼식을 보고 인근에 있는 80년대식 다방에 들러 주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 향교에서는 국제결혼식이 많이 치러진다고 합니다. 사랑이 국경을 넘어서 글로벌 시대가 된 것을 결혼 풍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 다문화 행사가 부쩍 많아졌고, 아울러 다문화에 대한 시각도 점점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합니다.

다문화에 대해 생각하다가 김중미 작가의 ‘모두 깜언’ 속 유정이가 떠올랐습니다. 책 속의 유정이가 어렵고 힘든 현실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흩어진 제2의 유정이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꿈을 펼치려고 애쓰는 모습에 함께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맡은 것은 숲 속의 초록 내음 같은 싱그러움이었습니다. 곱게 땋아내린 소녀의 머릿결에 윤슬처럼 반짝이는 감동. 참 아프고 상처투성이인데, 소릿길 걸을 때처럼 어느 결에 싱그러워지는 것은 아픔조차 따스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나던 봄이 칡꽃향기 실은 바람’을 싣고 오면 멀지 않아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여물어 ‘박새, 곤줄박이, 쇠딱따구리가 몰려다니는’ 겨울이 됩니다. ‘힘이 약한 존재들이 함께 어울리며 산다’는 대목에서는 작가의 내면이 은밀하게 드러나며 따스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글에는 소녀의 땋아내린 머리 가닥처럼 여러 가닥이 어우러져 있습니다만, 아이들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언청이 유정이를 향한 할머니와 삼촌과 친구들의 따뜻하게 녹아있는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외모나 상황에서 몹시 힘들고 아프지만 온돌 같은 사랑 덕분에 일그러진 외모와는 달리 유정이는 밝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랑이 메말라 시들거나 말라버리는 아이들을 숱하게 보곤 하는데 그나마 유정이 주위엔 유정이가 곧게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손길이 많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언청이 딸을 낳고 떠난 엄마와 교통사고로 죽은 아빠, 언청이가 죽기를 바라서 윗목에 두었다는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할머니, 조카를 끝까지 사랑하는 작은 아빠와 베트남에서 시집온 마음결 고운 작은 엄마, 다문화 가정 용민이가 겪는 다름이 주는 슬픔, 조선족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밑바닥에 숨기고 사는 광수, 공부를 잘하는 가족 중에 유독 공부를 못하는 지희의 열등감, 베트남에서 시집 와 매 맞고 도망 온 로앤의 쓰라림 등. 뜯어보면 아픔이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친 듯 투박한 광수 안에 꼭꼭 숨겨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을 얇게 베어내는 것 같습니다. 새 휴대폰을 자랑할 때는 엄마와 자신을 이으려는 광수의 부단한 몸부림이 애처로웠습니다.

유정이는 가족의 사랑을 소쿠리째로 받지만, 내면에는 은밀하게 숨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가 아물었겠지. 내게 엄마가 흉터로 남은 것처럼, 엄마에게도 내가 흉터로 남았을 게다’며 아픔을 이해로 승화시키고자 애쓰는 성숙한 몸짓이 오히려 눈물겹습니다. 힘들게 사는 어머니를 만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실을 깨닫고 특성화고로 진로를 정하는 광수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자신을 세우며 뿌리를 견고히 내리는 나무가 연상됩니다. 다문화에 대한 차가운 시선, 다문화라고 놀리는 바람에 버스를 못 타고, 엄마의 낯선 이름조차 부끄러워하는 다문화자녀 용민이가 안팎에서 겪는 갈등과 차별은 스칠 때마다 아리는 생채기입니다.

저마다 결핍이 있지만 그 커다란 구덩이에 함몰되지 않고, 구덩이를 자신의 굳센 의지로 차곡차곡 채워 사랑의 꽃을 피우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격려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결핍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매개가 되고, 서로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말은 작가가 13년 동안 강화에서 부대끼면서 피워낸 생명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학교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추억과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작은 일에도 푹푹 터지는 아이들의 상처 바닥엔 너나할 것 없이 가정에서 받은 아픔이 고름이 되어 숨겨져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것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중미 작가님은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아픔과 상처도 희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 피부색, 언어, 문화 등 다른 것이 많습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외쳐 보지만, 정작 내 몸에 익숙해진 차별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촉촉한 눈맞춤이 필요합니다. 다문화축제가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따뜻하게 손잡는 일이 필요합니다. 단풍보다 더 아름답게 물드는 아이들의 꿈을 위해 이 가을에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책 한 권을 권합니다. 저마다 곱게 꿈이 여물어가는 자녀들에게 다문화에 대해 접할 수 있도록 책 한 권을 펼쳐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원미옥<대구 구암중 교감>

기자 이미지

최은지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