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지역 문학상의 의미

  • 입력 2017-11-11   |  발행일 2017-11-11 제23면   |  수정 2017-11-11
[토요단상] 지역 문학상의 의미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연례행사의 하나로 올해도 ‘포항 소재 문학상’의 소설 부문 심사를 진행했다. 문학상을 시행하는 전국 곳곳의 지역들과는 달리 이 상의 경우는 작품의 소재를 포항에서 취해야 한다는 점이 확고한 규정처럼 작용한다. 작품의 소재나 내용이 포항과 무관한 경우 작품의 문학적 성취도가 아무리 빼어나다 해도 애초에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심사를 처음 의뢰받았을 때 이 규정의 문제에 대해 말해 보았다. 문학상이란 것이 훌륭한 문학 작품을 기리는 것일 텐데 작품의 주된 요소라 하기도 어려운 소재에 발목이 잡혀서야 되겠는가. 소재의 제한 때문에 전국 각처의 문학(지망)자들이 선뜻 응모할 수 없을 테니 이는 문학상을 널리 알리는 데도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은가. 지구촌이란 말이 현실이 된 마당에 지역성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대체로 이러한 생각들을 품고 은근히 문제 제기를 표했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같이 심사를 진행하는 분들이나 이 문학상 제도를 운영하는 분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심사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 중에서 더러는 내게 그러한 생각을 표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이 이야기가 길어지지는 않는다. ‘포항 소재 문학상’을 주최하는 포항시의 입장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면서 유야무야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은 어찌 보면 문학에 문외한인 공무원이 아마도 별 생각 없이 내린 판단을 문학 전문가들이 그대로 좇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사정이 이렇다면 아름답지 못한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해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사 요청이 오면 흔쾌히 수락한다. 경제적인 맥락만을 따르는 문화상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예술로서의 문학에 전념하는 이들의 노고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고, 이런저런 작품을 읽는 재미가 없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더해서 소재의 제한성에 대한 찜찜함이 시나브로 사라져서 수준 미달의 작품들을 볼 때 소재적 제한 때문에 작가가 제 능력을 맘껏 펼치지 못했으려니 생각해주는 정도에 그치게 된 것도 이유가 되겠다.

곰곰 생각해 보면 소재의 제한이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조선 시대 문인들이 서로 시재(詩才)를 자랑할 때도 운자(韻字)를 내어 경쟁의 성격을 강화했던 것을 생각하면, 작품들을 받아 상당수를 탈락시킨 뒤 선정된 것들에 순위를 매겨 상을 주는 문학상에서 부가적인 심사 기준을 두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문학성 자체에 반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것도 아닌 다음에야 더욱 그렇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점도 크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지역의 문화를 풍부하게 하려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 할 때 문제될 것은 없다. ‘포항의 문학’, 지역의 문학을 키우는 일이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지역 문학상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방침은 오히려 적극 권장할 일이다. 사람이나 자본, 문화 시설 등 거의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각 지역의 문화가 나름의 특수성을 갖추려 하는 것은 소중한 움직임이다. 문화의 중심화·집중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문화의 발전에 어떤 도움도 못 될 단일화·동일화 경향 또한 강화되기 쉬운 까닭이다.

지역의 문학상이 자신의 특성을 찾는 방식이 소재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아쉬움을 없애자고 특수성을 포기한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문학의 발전이 세계문학에 기여하는 방식이 ‘한국의’ 문학을 키우는 데 있는 것처럼, 각 지역의 문학들이 저마다의 특성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한국 문학의 저력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특성을 좀 더 세련되게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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