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대구 음악의 선구자 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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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9면   |  수정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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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계성학교 학적부. 손태룡의 저서 ‘피아노가 낙동강을 타고 들어오다’에서 발췌한 자료다.

1980년대 중후반 계성중학교 시절. 지각해 오리걸음으로 50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의 세월이 지나 모교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니…. 참 과거는 돌이켜 보면 한순간인 것 같다.

그시절 ‘주번’이란 게 있었다. 교실청소의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 시작하기 전 교단 앞에서 대표 기도까지 해야만 했다. 국영수 과목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성경수업도 꽤 비중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도 있었다. 매일 아침 할머니가 틀어 놓은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듣다가 부리나케 찬송과 기도가 있는 계성학교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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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학교는 1906년 미국 북장로파 선교사인 아담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08년 지금의 개성학교 위치에 아담스관을 지어 이전하였다. 20세기초 미국 북장로파가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한 대표적인 곳이 대구와 평양. 그래서 계성학교를 졸업해 평양에 있는 숭실전문학교에 들어가서 음악교육을 받고자 했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작곡가가 박태준, 현제명이다.

박태준은 1921년 숭실전문학교를 졸업, 마산 창신학교 교사로 있을 때 동료 교사인 이은상을 만나 봄·여름·가을·겨울을 노래한 ‘사우(思友)’라는 시를 받아 작곡을 하였다. 훗날 이 곡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이 사우란 곡은 뒤에 ‘동무생각’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바뀌게 된다. 작년에 발표한 나의 1집 앨범 제작 때 새롭게 편곡해 수록한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때 발표된 11곡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불린 우리 대중음악과 동요, 가곡 등을 현대 정서에 맞게, 그러면서도 당시의 정서를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그 중 동무생각을 편곡해 가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대부분의 음악은 4/4박으로 시작하면 4/4박으로 끝이 난다. 3/4박, 2/4박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노래는 전반부에서 4/4박으로 시작해 후반 후렴구인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로 시작되는 부분은 9/8박으로 끝이 난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박자를 넘나들며 편곡을 할까, 드러머인 내겐 참 고민을 많이 안겨준 곡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조선 초기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가스펠의 정서가 가득하게 전해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하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 박태준, 현제명 같은 작곡가가 아닌 24세에 요절한 박태원이다. 박태원은 1897년 포목상 부모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돌림자 이름에서도 짐작되듯 그의 동생이 작곡가 박태준이다. 당시 아버지는 남성정교회(남성로 제일교회)의 세례 교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기독교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1911년 계성중학교에 입학하고 1916년 숭실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배울 게 없어 연희전문학교 문학부에 입학했다. 당시 교장이었던 언더우드의 서기로 근무하며 학비를 충당했고 1920년에 제2회 졸업생이 된다.

박태원은 연희전문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대구로 내려와 계성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 여학생들을 모아 가사를 번역한 외국곡들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1917년 대구 최초의 혼성 합창단 발표를 대구제일교회에서 개최한다. 이때 찬양단원에는 박태준을 비롯해 현제명, 김문진(바리톤 김문보의 형), 권영화 등도 있었다.

문학에도 재능이 있었다. 1919년 민족시인 이상화(1901~43)도 그의 서울 하숙집에서 같이 지냈는데 이때 영감을 받아 많은 시와 글을 잉태하게 된다. 그 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수학 도중 폐결핵에 걸려 대구 자택에서 1921년 24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비록 짧지만 박태원의 음악 활동은 대구음악사에 의미로운 족적을 남긴다. 그가 뿌려 놓은 씨앗들이 더 큰 발자국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개사한 클레멘타인을 음미해본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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