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금호강 종주 116㎞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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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7면   |  수정 2017-11-10
발원지 안내판·표지석 하나 없어 ‘종주 신고식’은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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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물, 길이 어우러진 자연댐 같은 금호강의 영천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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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장면 가사령에서 다운힐하여 1시간 거리에 입암서원이 있다. 느티나무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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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금호강 종주 라이딩의 종점인 강정고령보의 디아크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라이딩은 땅·물·산을 잇는 ‘사람의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산과 물의 속성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문격인 ‘지도유설’에 잘 표현돼 있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 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山主分而脈本同其間 水主合而原各異其間)’이다. 그런데 ‘길이 산을 만나면 고개요, 물을 만나면 나루’라는 명문장은 문경새재 옛길박물관에 가면 잘 새겨져 있다. 산에는 고갯길, 강에는 나룻길, 인간이 어울려 사는 골목에는 고샅길이 열린다.

날 좋은 10월 말 10人의 라이더 대장정
금호강 발원지라는 포항 죽장면 가사령
신고식 못하고 가사천 따라 계곡 다운힐

옛 영천 땅이었던 죽장면 입암서원 지나
면소재지 벗어나자 자호천 이어 영천댐
임고강변공원·임고서원 가을 풍광 만끽

영천생태공원 건너서 금호강자전거길
‘금호선사선유도’ 속 산수진경 즐기다
낙동강과 만나는 달성 디아크서 대단원


금호강 종주 라이딩은 탐험이 비밀을 찾고 정체성을 탐사하는 과정인 것처럼 대구경북에 사는 시도민은 살아서 한 번은 경험해 보면 좋을 인생길 여행 같아서 시도했다. 하늘도 땅도 산도 강도 기뻐할 이 역사적인 라이딩에 10명이 모였다. 올 가을 중 날씨가 좋았던 10월22일, 대구지하철 1호선 용계역에서 만나 25인승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금호강 발원지로 알려진 포항시 죽장면 가사령으로 직행했다.

서포항IC에서 기계·기북·상옥을 거쳐 꼬불꼬불 첩첩산중 죽장 가사령에 이르니 오전 10시10분경.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산신령님께 인사를 올리려고 했는데, 안내판이나 표지석이 보이지 않고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신고식에 실패하고 서둘러 출발지로 돌아왔다. 대장님의 안전수칙 준수에 대한 설명을 마치기 무섭게 라이딩을 시작했다. 단풍이 물든 산 아래 죽장 계곡 가사천을 따라 즐겁고 신나는 다운힐을 만끽했다. 산골마을 첫집은 가사령 2㎞ 거리에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옛날 된장을 만들어 파는 가사산촌이었다. 인기척 없는 이 산골에 가사3교를 지나면 민박 캠핑하는 휴하우스가 나온 뒤 죽장로 691번길을 만나기 전까지는 위치 정보를 알기조차 어려운 삼수갑산이었다.

가사리에서 매현리 삼굿마을·매제마을을 지나니 입암리였다. 거꾸로 내려가는 라이딩길에서 입암서원 간판을 보지 못했다. 입암서원은 존재감을 표나게 드러내지 않고 은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완만하게 흐르는 길에서 하마터면 스치고 지나칠 뻔 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있어 쉴 틈 없이 훔쳐볼 수 있었다. 입암서원은 1657년 영천지역 유림의 공의로 여헌 장현광(張顯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됐다고 한다. 포항 죽장은 당시엔 영천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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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의 자랑인 임고서원도 금호강변에서 만날 수 있다.

선생의 연보에 47세된 봄인 1600년 입암을 유람하고, 84세인 1637년 거자필반한 것으로 나온다. 청나라의 침략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난 뒤 영천의 입암으로 은거해 지내다 만욱재에서 영면해 입암은 곧 나그네의 집 여헌(旅軒)이 되었다. 선생이 유랑하는 나그네로 우주를 벗삼고 사방을 집 삼아 우주자연과 하나돼 놀고 즐기며 살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포항시 죽장면 가사천변에 있는 입암서원이다. 산업화로 죽은 강의 대명사로 불리다 생태환경적으로 복원해가고 있는 금호강을 선비의 강이라고 한다. 그 시작점은 옛 영천 땅 포항시 죽장면에 있는 입암서원이었다.

개울을 형성하고 흐르던 가사천이 내를 이루는 곳은 죽장면 소재지 인근 입암교 일대였다. 죽장면 소재지가 있는 서포항농협 죽장지점 하나로마트에서 간식 먹는 틈을 이용해 입암교 위에서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조망했는데 전망이 좋았다.

죽장장터를 벗어나 새마을로를 따라 지동삼거리까지 가서 영천 방향으로 우회전하니 69번 지방도로 영천 32㎞ 도로표지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자호천과 함께 달리게 된다. 지동교에서 도일교로 들어가는 경계에서 영천시 포은로로 영역이 바뀌었다. 포은로에 들어서자마자 오토바이커 행렬이 지나갔다.

자호천이 자양면 충효리에서 삼귀리로 합류하는 어느 지점에서 영천댐은 형체를 드러냈다. 자양면의 6개 법정동을 수몰돼 만들어진 영천댐은 산과 물이 만나 절경을 빚어내는 자연호수처럼 아름다웠다. 영천호에 홀릭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귀리를 지나 영천댐 망향의 공원에서 점심 식사 전 중간 휴식을 취하고 자전거 정비를 마친 뒤 임고서원까지 줄행랑을 치듯 속도를 냈다. 호숫가에 생육신 이맹전을 배향한 용계서원, 수몰 뒤 이건한 강호정·삼휴정·하천재·자양서당 등이 있는데, 앞서 간 로드바이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멈춰설 수 없어 눈인사만 하고 건너뛰어야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묘각사 입구가 있는 용화교를 건너면서 약간의 오르막 구간이 있었지만, 영천호는 환상적인 평지 라이딩로였다.

영천댐 하류공원부터는 임고면이었다. 임고면 삼매리 맛나정가든을 지나 직진하면 덕연리가 나오고 자호천을 다시 만난다. 강폭이 길어진 자호천을 건너려면 양향교를 통해야 하는데, 양향교 위에서 자호천을 내려다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가을의 운치를 느끼게 했다. 금호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은 양향교 일대 임고강변공원이었다. 평천초등과 임고성당을 지나니 100년 넘은 플라타너스, 90년 넘은 느티나무, 80년 넘은 은행나무로 전국 아름다운 학교 숲 대상을 받은 임고초등학교가 나왔다. 무엇보다 오전 라이딩의 꼭짓점에 임고서원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충신의 대명사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이 금호강 자호천변에서 선혈을 뿜어 금호강을 지조와 선비의 강으로 붉게 물들인 것인가.

복원공사로 더욱 아름답게 단장한 임고서원의 가을 기운을 느끼면서 금호강 종주라이딩을 기념하는 단체촬영을 했다. 일행은 임고서원 삼거리 옆 일미식육식당에서 소고기찌개를 먹고, 임고우체국 방향 양수교에서 우회전하니 자호천 강둑길에 자전거겸용도로가 나왔다. 사과 따는 농부를 별빛처럼 만나고 MTB 타는 기분으로 자호천변 조교동·연하동을 경유하니 영천강변체육공원 건너편에 금호강자전거길이 열렸다.

로드바이크 대오는 2시경 영화교를 통과했다. 뒤처진 MTB는 영동교를 지나 남쪽 둔치 부지에 마련된 영천공설시장으로 가는 잠수교를 건넜다. 강이 된 영천생태지구공원에는 모터보트 몇 대가 물위를 붕붕 날고 있었다. 수상레저가 펼쳐지는 금호강이었다. 강 건너에 조양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정몽주 선생이 지은 조양각에서 비롯됐다. 계속 페달을 밟아 영천교 밑을 통과해 쉴 새 없이 나아갔다. 눈 앞에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40㎞ 속도로 달리는 로드바이크와 MTB는 동행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각자도생의 길을 달렸다.

대경로 금호대교 밑을 지나 거여철교가 나오는 도동에서 금호강자전거길을 만나려면 금호성당 쪽으로 가는 황정교로 가야 안전하다. 영천 황정교는 금호강자전거라이딩의 주요 브릿지다. 금호강자전거길이 단절되고 남촌강변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구역강변길을 따라 오르니 거여로의 황정교가 나왔다. 이 다리를 넘어서니 금호강 종주라이딩 지도의 퍼즐이 완성되었다. 그 순간 내 자전거는 금호강을 다 누벼보게 됐다. 서원이 있을 자리에 터를 잡은 금호성당은 금호강자전거길 영천라이딩의 주요 분기점으로 숙지해두면 좋다.

다시 해후를 한 금호강자전거길에서 와촌면 용천리를 지나면 물빛고을 하양이다. 금호강변에서 본 최고의 풍광은 하양읍 남하교에서 대구 쪽을 봤을 때 눈에 들어온 이름 모를 산하였다. 동네 이름에 걸맞게 더 이상 전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남하교에서 본 금호강은 은빛 물결 반짝이는 바다였다.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은 마음에 담아두어야 하리.

이제부터 라이딩 구간은 너무나 익숙해서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금호강이다. 금호강변에는 정자 등 볼거리가 많다. 퇴계 선생으로부터 이름을 받은 성동로의 고산서당, 고산팔경의 반계수류가 있었던 그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동 안심습지, 대구 제1경 금호명월이 펼쳐진 동촌 아양루, 대구에 성리학의 씨를 뿌린 송담 채응린의 압로정과 소유정, 동변동 가람산 입구에 있었던 세심정과 임란 공신 구회신의 화수정(花樹亭), 서재리의 억새공원과 용호서원(龍湖書院), 이천리 이강서원, 강창교 인근에 자리한 이락서당, 금호선사선유도와 관계가 있는 강정, 삼신산(三神山)의 선경이었다는 부강정(浮江亭)이 있었던 강정고령보 디아크까지 금호강은 선비문화의 유산을 머금고 있는 대구의 산수진경이다.

“그날 미풍이 그치지 않고 불고, 하늘의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둑과 꽃과 못가의 버드나무가 울긋불긋 10리에 비단병풍을 둘러친듯하여 참으로 거울 같이 아름다워” - 여대로의 ‘금호선사선유도(琴湖仙査船遊圖)’ 중에서.

감호 여대로는 “후세 사람들이 오늘 우리의 모임을 사모하기를 오늘 우리가 옛날 사람들의 모임을 사모하듯 사모할 줄을 알겠는가”라고 후사를 걱정했다. 그렇지만 21세기 ‘금호선사선유도’를 좇는 흐름은 금호강 종주 라이딩으로 형태는 다르지만 명맥을 잇고 있다. 23인을 넘어 2천300명이 금호강을 떼지어 달릴 날도 오지 않을까? 선유문화를 계승하는 수상레저 활동도 발현하게 될 것이다.

달성군 다사읍에서 만나는 금호강의 해 지는 풍경도 일품이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디아크에 도착하니 오후 6시 무렵이었다. 디아크에 불빛이 들어왔다. 팡파르와 축포 세례를 받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건축 디자이너 하니 라시드가 설계한 디아크는 낙동강자전거길의 허브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금호강 종주 라이딩의 랜드마크로도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견된다.

금호강은 대구경북을 한 몸 한 형제로 아우르며 흐르고 있었다. 금호강을 따라 흐르고 흐르다 보면 선비의 강 같은 마음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낙동강 종주 라이딩을 한 라이더들에게 도전 금호강 종주 라이딩을 권한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두 번째 금호강 종주 라이딩 때는 1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모든 아름다움을 즐기며 달려야겠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가사령-입암서원-죽장장터-자양면 강호정-용계사-영천댐-임고서원-양수교-영천생태공원-황정교-금호성당-금호강자전거길-안심습지-동촌 아양루-강정고령보 디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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