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누가 자치의 敵인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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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8   |  발행일 2017-11-08 제31면   |  수정 2017-11-08
[박재일 칼럼] 누가 자치의 敵인가

탤런트 김무생의 아들로 영화배우인 김주혁씨가 비운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놀라고 연민이 들면서 한편 개인적으로는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가 결혼했다’란 제목이 다소 찜찜한 이 영화는 결혼한 아내(손예진 분)가 ‘두 명의 남편’을 옆에 두고 스페인의 명문 축구팀 FC바르셀로나 홈구장으로 날아가 열광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별로 연관 없는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바르셀로나가 요즘 유럽에서 격한 시위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제1도시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 지방은 고유의 언어와 우월한 경제를 바탕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해 왔다. 마침내 최근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실력 투쟁에 나섰다. 스페인 중앙정부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시위를 진압하고 카탈루냐 자치정부 지도부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사실상 반역으로 규정했다. 이에 일부 지도부는 벨기에로 망명까지 했다.

유럽의 역사는 분열과 통합의 반복이라고 한다. 잘게 썬 듯한 조그만 소국(小國)들이 몇백년씩 전쟁을 하다가도 로마제국이나 오늘의 EU처럼 거대 제국을 도모하기도 한다. 반대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가 불편하다고 판단되면 독립과 분리를 주창하며 갈라선다. 그 철학의 힘으로 오늘날 유럽은 EU공동체의 우산 아래서도 지방자치와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는 정치제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잘 발달해 있다. 카탈루냐뿐만 아니라 유럽에는 영국의 스코틀랜드, 밀라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지방이 늘 중앙권력으로부터 이탈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은 유럽의 그것처럼 분리 독립의 토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단일민족, 단일언어 그리고 단일 문화권의 단결된 공동체다.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 민족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대한민국은 수도 서울의 부(富)와 권력(權力)의 초집중으로 세계적 연구 대상이 됐다. 경제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서울의 1인당 개인소득은 1천997만원(2015년 기준)으로 울산을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다. 정치 권력과 교육 문화의 쏠림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 일방, 중앙권력 일방의 독주는 대한민국이란 국가공동체의 단결을 스멀스멀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방이 자치를 달라고 외치는 이유다.

지방자치운동 단체들은 지금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나누는 분권(分權)’이 포함된 개헌(改憲)을 주창하며 여론 형성에 몰입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이 같은 운동에 화답했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확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때 개헌 국민투표를 거듭 약속했다.

이를 놓고 서울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시비를 걸고 있다. 당장 국가권력, 즉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권력 분산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한쪽이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지방민의 시각과 기대와는 크게 상충된다. 서울의 정치권력 엘리트들은 국회의 권력을 지방의회로 내려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힘겨운 싸움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분권 개헌을 현 정권의 내년 지방선거 전술로 의심하는 부류도 있다. 대체로 자유한국당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한국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의도로 의심하기도 했다. 홍준표 대표마저 지방선거 때 개헌투표는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정책 모두를 찬성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지방민은 지방자치의 확대만은 시대정신으로 믿고 있다. 과거 세월 우리가 똘똘 뭉친 중앙집권으로 이만큼 온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미래의 한국은 그런 낡은 국가운영 방식으로 더 진화하기는 어렵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지방은 지금 ‘아내가 결혼한 것’처럼 불편하다. 카탈루냐는 잘사는 탓에 독립하겠다고 했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지방은 불평등하기에 자치를 요구한다. 중앙의 억압을 더 이상 관용하기 어렵다. 지방민의 혜안이 요구된다. 누가 자치시대의 적(敵)들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유럽의 사례를 보지 않더라도 자치가 씨줄 날줄로 얽힌 대한민국만이 선진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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