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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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6   |  발행일 2017-11-06 제31면   |  수정 2017-11-06
[월요칼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지금 지구촌은 북한의 핵·미사일 확장에 따른 북·미 간의 대치로 불안한 상태다. 호사가와 이에 편승한 언론은 날마다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핵전쟁에 대비해 생존배낭을 싸야 하느니, 이른바 ‘지구 최후의 날(둠즈 데이: Doomsday)’이 다가오느니 어쩌니 하며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북한과 휴전선을 경계로 접한 남한은 겉으로는 평온하다. 북한의 불침을 낙관하거나 위기를 애써 무시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초등학교 때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그 내용이 기억에 생생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어느날 꼬마 셋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수소폭탄이야. 터지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되거든.” 한 아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다른 아이가 반박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야.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사람은 꼼짝없이 호랑이 밥이 되어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러자 또 다른 아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귀신이 가장 무서워. 밤중에 혼자 길을 가다 귀신을 만나면… 생각만 해도 심장이 멎고 소름이 끼쳐.” 아이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마침 허리가 구부러지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는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망각이지. 흘러가는 세월에 묻혀 소중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망각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거야.”

불확실성 속에 세태가 급변하고 있는 지금,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개개인의 연령대와 가치관에 따라 각양각색의 무서운 존재들이 등장할 것이다. 위에 인용된 대로 어린 시절에는 귀신이나 가난·수소폭탄·벼락·화재 등이 가장 무서운 것일 수 있겠다. 청년기에는 실직·실연 같은 것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바뀔 수도 있다. 중장년이 되어서는 상실감·우울증 등 물질적인 것보다 비물질적인 것이 무서워질 수도 있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는 채권자가 무서울 것이고, 사업가나 자영업자는 무엇보다 세무조사가 무서울 수 있다. 죄를 짓고 숨어 다니는 범죄자들은 경찰·검찰이 무서운 존재일 것이다.

누군가는 생에 대한 권태가 가난이나 병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설정된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열정이 있어야 삶의 활기가 유지된다. 그 과정에서 성취의 기쁨이 있고 때로 좌절의 고통이 동반된다. 햇볕만 받는 땅은 사막이 돼 버리듯이 성취감이나 좌절감이 없는 밋밋한 삶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노인의 무서움인 망각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신이 살면서 받은 은혜나 혜택, 소중한 인연을 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서글프면서도 무서운 일이다. 치매가 바로 망각의 원인 제공처인데 치매환자를 가족으로 둔 지인들로부터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친구는 물론 딸조차 몰라보는 구순의 노모를 간병하는 지인의 얘기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대형 여객기 조종사가 운항 중 망각으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를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망각이 무서운 이유다.

각자 무서운 대상도 제각각이겠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오판’이 아닐까. 북한이든 미국이든 도발의 열쇠를 쥔 당사자들이 상황을 오인하거나 오판해 극단적인 처방전을 내놓을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국제사회는 두 당사자가 결코 건너서는 안되는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절대 다수는 폭주기관차에 비유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충돌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들 아는 그 이유는 미국이 한국·일본에 무기를 팔아먹어야 하고, 북한도 김정은 체제의 결속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변국인 일본·중국·러시아도 한국이 지금처럼 북한과 대치해야 자국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만에 하나 오판으로 선제타격이 실행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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