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고립무원(孤立無援)의 땅에 선 박근혜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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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6   |  발행일 2017-11-06 제30면   |  수정 2017-11-06
재판거부, 옥중투쟁 중에
불거진 국정원 상납 의혹
洪 대표의 제명 결정으로
정치적 바람막이도 잃어
원칙 지키는 게 남은 외길
20171106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서울구치소에서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구속재판 1차 기한 만료일이었던 10월16일 재판 포기를 선언한 뒤 19일부터 변호인을 포함해 단 한 명의 외부인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탈당을 권유하는 윤리위의 징계결정서가 23일 전달됐지만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재판 보이콧’을 넘어 ‘옥중투쟁’이다. 그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미 말했다. 법치의 이름으로 정치보복이 이뤄지고 있고,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를 법리싸움을 포기하고 여론전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사법부가 촛불민심을 의식한 여론재판을 하니 그에 맞서 열성 지지층을 다시 끌어모아 맞불을 놓기 위한 시도라고 내다봤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상황 반전(反轉)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구속되지 않았던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긴급체포돼 구속됐다. 이재만은 대통령의 지시·요구에 따라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올려줬다고 진술했다. 이를 두고 핵심 측근이 죄를 작게 만들기 위해 대통령을 방패삼아 자기보호막을 쳤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건 곁가지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재판 내내 ‘사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한 말을 철석같이 믿고 위안으로 삼았던 지지자들이 이제 진실 공방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 몰린 새로운 상황이 본질이다. 지금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말처럼 만일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를 거쳐 최순실에게 전달됐으면 지지자들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유입이 왜 이제 와서 불거지느냐, 재판 거부 선언 파장의 물타기용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또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국정원 돈을 ‘통치자금’으로 끌어다 썼는데, 왜 박근혜정부 일만 문제 삼느냐는 반박도 나온다. 궁색한 변명들이다. 물타기 시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팩트’(fact·사실) 자체가 없었다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재만·안봉근 두 사람은 팩트를 인정했다. 과거에 국정원(안기부)의 비밀스러운 돈이 집권자의 비자금과 혼용되면서 소위 통치자금이 조성된 일은 이미 여러 차례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박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잘못된 구습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이어받은 책임이 있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론에 힘이 실리는 건 새 정부에선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될 처지에 놓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통합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1호 당원’의 당적을 없애버렸다. 야당에 남아 있는 친박계 일부 정치인들이 반발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친박계가 폐족 선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뿔뿔이 흩어져 모래알 같은 조직이 된 지 오래다. 시간은 결코 박 전 대통령 편이 아닌 것 같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또 다른 의혹들이 들춰진다. 그만큼 허술하게 국정운영을 해 왔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획기적인 반전 카드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답게 ‘원칙’대로 가야 한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사법 절차를 인정하고 진행해야 한다. 정치적인 고립에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지만, 법적인 고립까지 자처해선 안 된다. 재판기록이라도 남겨야 훗날 역사가 재평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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