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 중구 소울마켓인대구춤판협동조합 사무실 겸 대구댄서복지회관에서 김동하 대표를 만났다. 그는 대구댄서복지회관에 대해 “복지회관이라고 이름을 붙인 건 협동조합 사무실이 대구의 댄서를 위한 곳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1999년 한 아이의 세계가 꿈틀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그해 친구를 따라간 안무연습실에서 춤을 처음 접한 아이는 이후 자신의 세계를 춤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한창 많이 출 때는 하루 12시간씩 연습실에 머물렀다. 자신이 빠진 ‘로킹’(Locking·스트리트댄스의 한 장르)에 청년기를 다 쏟은 결과 대학 시절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리트댄서 중 한 명이 됐다. 2006년엔 세계 4대 비보이 대회의 하나로 꼽히는 ‘UK 비보이 챔피언십’에 한국대표로 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으로 먹고산다는 건 막막한 일이었다. 그 안에서 더 이상 밝은 미래를 찾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아이는 2008년, 10년 가까이 ‘춤’으로만 가득 채웠던 자신의 세계를 등졌다. 춤을 그만두기 위해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맞은 건 여전했던 ‘대구의 열악한 춤판’. 열정, 재능, 실력을 모두 갖췄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주변 댄서들이 안타까웠다.
계약과정 금전적 피해 최소화 도움
영상·춤 결합한 마케팅 사업
커뮤니티댄스 개발·보급 앞장
재능 활용해 어려운 이웃돕기
정몽구재단 인큐베이팅 혁신상 수상
이에 ‘스트리트댄서들이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도록 돕자’는 결심을 했고 1999년부터 저변에 존재하던 댄서의 모임인 ‘대구춤판’을 재조직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댄서들의 활동을 돕기 위한 협동조합 ‘소울마켓인대구춤판’을 조직해 이끌고 있다. 김동하 협동조합 대표(34)다.
소울마켓인대구춤판협동조합은 2015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1년간 거쳐 그해 협동조합으로 탄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
김 대표는 협동조합 결성 배경에 대해 “스트리트댄서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저랑 같이 춤추던 친구들이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아니잖아요.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라나는 댄서들이 문화예술인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찾자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사회적기업을 떠올리게 됐죠”라고 말했다.
조합원은 김 대표를 포함해 박수영·박정연·배성윤·서경호·이준원·이현영씨 등 7명이다. 이들과 연결된 대구지역 스트리트댄서만 120~150명 된다.
소울마켓인대구춤판협동조합은 대구의 스트리트댄서들을 위한 보조기능을 한다. 최소 공연비 단가를 정해 계약과정에서 댄서들이 입을 수 있는 금전적 피해를 최소화한다. 공연비나 계약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지 않은 어린 춤꾼들의 계약을 조율해 주기도 한다. 또 대회 출전에 따른 금전 부담을 느끼는 학생 댄서들이 대회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한다. 이 밖에 댄서들의 재능을 이용해 어려운 사람도 돕는다. 2015년에는 기부 플래시몹 행사를 열어 번 수익금으로 불우한 가정에 연탄 배달을 했다.
춤을 이용해 사람 간 친밀도를 높이는 ‘커뮤니티댄스’를 개발·보급하기도 하고 영상제작사업도 한다. 최근에는 영상과 춤을 결합한 마케팅사업을 시작했는데, 오프라인에서 춤을 이용해 제품·서비스 등을 홍보하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온라인에 올리는 식이다. 내년에는 어르신 스트리트댄스팀을 만들 예정이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 현대정몽구재단의 H-온드림 인큐베이팅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한 전국 200여개 기업 중 2위였다.
김 대표는 지역 스트리트댄스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협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에서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공연비는 거의 제자리인 데다가 공연 수도 많이 줄었어요. 20년 전 대구에서 활동하던 스트리트댄서 중 90%가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뒀죠. 그런데도 어린 댄서들은 계속 배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회가 서울에 몰려 지역 댄서의 여건이 더 안 좋아지고 있는데, 댄서들이 춤출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저희 협동조합이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한참을 생각하던 김 대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술인, 춤꾼을 포함해 요즘 먹고살기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역 스트리트댄서의 노력과 재능을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자라나는 댄서들이 돈 없어서 춤을 못 추겠다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먹고살아야 된다, 왜 먹고살아야 되냐, 춤을 추고 싶으니까 먹고살아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계속 춤을 출 수 있도록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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