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촛불민심의 또 다른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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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4   |  발행일 2017-11-04 제23면   |  수정 2017-11-04
[토요단상] 촛불민심의 또 다른 실체
최병묵 정치평론가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집회가 1년을 넘겼다. 지난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선 촛불 1주년 기념집회가 열리고 있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예정돼 있다.

지난 10월28일 집회가 열리던 광화문광장을 둘러봤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사람 모습만 보였다. 민주노총 깃발도 여기저기 나부꼈다. ‘진보세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판이다. 그들을 빼면 누가 남을까. 촛불은 이제 집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진보세력이 ‘지적소유권’을 주장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됐다.

1년 전의 촛불은 어땠는가. 필자는 정치평론가였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밤늦도록 현장과 방송국을 오갔다. 직업적으로 열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격려 인사도 많았지만 항의 또한 많았다. ‘격려’는 진영에 치우치지 않는 해설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것이었다.

‘항의’는 “왜 더 강한 톤으로 박근혜를 비판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보수 성향을 보이는 이도 많았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찍었던 박근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에 왜 참석했느냐”고. 그들은 답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국정농단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매듭지어야 한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뒤부터는 태극기집회로 불리는 시위로 이동했다. 다시 말하면 촛불집회의 초기에는 보수냐 진보냐가 크게 나뉘지 않는 가운데 국정농단에 분노하는 함성이 길거리를 메웠다. 물론 초기라 해도 이른바 진보세력이 많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초기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나라 지킴이’의 지향점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태극기로 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정치적 대처를 잘못하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만약 ‘나라 지킴이들’이 ‘박근혜’라는 개인을 버리고 보다 ‘큰 가치’에 매달렸다면 사태가 달리 진전됐으리라. ‘큰 가치’라 함은 국정농단과 같은 비정상적 국정운영 행태를 깔끔히 정리하고 대신 새로운 나라를 향한 동력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운동의 중심은 꼭 한 정파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핵심 친박이 아닌 한 참여가 한결 쉬웠을 것이다. 순전히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박근혜 국정농단에 책임이 덜한 사람들 위주로 판을 새롭게 짤 수 있다.

이럴 경우라도 올해 5월에 있었던 대선에서 흐름을 뒤집기는 당연히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선 후 6개월, 촛불집회 후 1년이 지나도록 야권이 지리멸렬·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현 야권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의 권위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선이 급한 나머지 친박을 끌어안았다가 이제야 내치면서 권위를 스스로 팽개쳤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개혁보수’라는 모호한 구호에 집착하며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다. 김무성, 남경필, 원희룡, 오세훈, 나경원 등 전현직 의원과 단체장 역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권위를 회복해 야권을 끌고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필자는 한 가닥 기대를 갖고 있다. 바로 홍 대표다. 그가 정치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한다. ‘나라 지킴이’ 재건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 이 세력은 사실상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적어도 초기 촛불집회 때처럼이라도 정의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세력을 복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비슷한 정파가 헤쳐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상한 국면에선 비상(非常)한 방법을 써야 한다. 적당히 시간을 벌면 선거철에는 어차피 보수와 진보로 나뉠 것이란 선거공학적 기대로는 기껏해야 2등이 될 공산이 크다. 정당의 틀을 허물고 국민운동으로 다시 뭉치겠다는 창조적- 파괴적이라 해도 좋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게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나라 지킴이들’이 진짜 원하는 방향 아닐까.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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