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배드 지니어스·폭력의 씨앗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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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3   |  발행일 2017-11-03 제42면   |  수정 2017-11-03
하나 그리고 둘

배드 지니어스
‘흙수저’ 여고생, 커닝으로 돈을 벌다


20171103

장르 영화의 유명한 악역들은 대개 남들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그러한 천부적 재능을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사용하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스스로 ‘사회악’이 된다. 태국에서 온 스릴러 ‘배드 지니어스’(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의 주인공 ‘린’(옥밥) 또한 또래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그녀는 자신의 우월함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자신과 다른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명분 하에 거래를 시작한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시작한 것은 시험 시간 중 조직적인 부정행위다.


태국 명문고 배경으로 집단 부정행위를 다룬 스릴러
시차 악용한 STIC 커닝준비·실행과정은 영화 백미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 감각적인 음악·편집 일품



교육열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에서, 태국의 명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린의 이야기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교육보다는 성적이 우선시되는 풍토, 그 안에서 겪고 있는 10대들의 아노미(개인이 겪는 규범적 혼란), 명문고와 시험을 둘러싼 비리 등 문화권은 달라도 우리 교육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팅이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이 영화에는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떠도는 ‘수저계급론’에 관한 주제까지 삽입되어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태국의 경제적 계급차를 묘사하며 이러한 환경이 범죄의 씨앗이 됨을 암시한다. 즉 아이들의 발칙한 범죄는 사실상 어른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평범한 교사의 딸인 린은 분수에 맞지 않을 만큼 수업료가 비싼 명문고에 들어가 일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학생들과 어울리게 되고 돈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돈은 많지만 성적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금수저 계급의 학생들은 ‘흙수저’ 천재 린을 이용해 성적을 올리려 하고, 돈이 필요한 린은 윤리적 고민을 뒤로하고 이를 수락한다. 린이 직접 고안해낸 기상천외한 부정행위의 방법이 성공을 거두자 이들은 점점 더 판을 키우기에 이른다.

유학을 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STIC 시험에 린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뱅크’(논)를 끌어들인다. 세탁소를 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성실히 살아가던 뱅크는 처음에 망설이지만 린의 비즈니스가 곧 엄청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린과 뱅크는 시차를 이용해 시드니에서 먼저 시험을 치르고 그 정답과 서술형 문제를 태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전송하는 계획을 짠다. 그것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배드 지니어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여러 인물이 각자 전문 분야를 맡아 범죄를 저지르는 케이퍼 무비의 관습까지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계획과 달리 변수가 계속 발생하고, 린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헤쳐나가는 장면은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시비(是非)를 덮어두고 관객들이 심적으로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은 린으로 분한 배우 ‘옥밥’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오차 없이 영상의 리듬을 스릴 넘치게 이끌어간 연출력 덕분이다.

첫 장편 스릴러 ‘카운트다운’(2012)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나타우트 폰피리야’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탄탄한 시나리오부터 감각적인 편집과 음악까지 자신의 장기를 충분히 발휘해냈다. 10대들의 부정행위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모방위험성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그는 영화의 결말을 보면 관객들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말이 다분히 교훈적이라는 점은 양가적으로 해석된다. 여운을 남기기보다는 다시 한 번 자본주의와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장르: 범죄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


폭력의 씨앗
‘악무한’의 폭력은 어떻게 자라는가


20171103

4:3의 화면 비율이 꽤 비좁은 느낌을 주는 가운데 단체 외박을 나가는 분대원 일행의 한때가 묘사된다. 직접적인 폭행이나 폭언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묘한 기류로 인해 선임병과 후임병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역학 관계를 감지하게 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 ‘폭력의 씨앗’(감독 임태규)은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 하나 없이 처음부터 심상찮은 분위기를 잡아가더니 마지막 신까지 제목 그대로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된 폭력성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의도적인 화면 비율도 그렇지만 풀샷을 배제시키고 한두 명의 인물을 크게 잡아주는 촬영을 통해 시종일관 답답하고 육중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 영화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주인공의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따라가는 트레킹 쇼트들은 ‘사울의 아들’(감독 라즐로 네메스)을 떠올리게 한다. 70여 년 전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루었던 영화와 현재 우리 군대 및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을 다룬 영화가 겹쳐지는 경험은 적잖이 꺼림칙함에도 영화는 보란듯이 그 유사성을 폭로한다.


임태규 감독의 전주국제영화제 韓 경쟁부문 대상작
단 하루 동안의 사건들 통해 폭력의 민낯을 여과없이
4:3 비율 화면·풀샷 배제 등 답답한 내면 전달 효과



외박 날 ‘주용’(이가섭)은 누군가 선임병의 폭행을 간부에게 폭로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내부고발자를 밝혀내기 위해 또다시 비밀스러운 폭행이 자행되고 이 과정에서 주용의 후임병인 ‘필립’(정재윤)의 이빨이 부러진다. 이를 덮기 위해 주용은 필립을 치과의사인 매형에게 데려간다. 매형의 집에서 누나 ‘주아’(소이)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용은 분개하지만 그 역시도 이미 필립에게는 다른 선임병들과 별 다를 것 없는 폭력의 가해자일 뿐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과연 끊어낼 방법은 있을까. 굵직한 질문을 던지는 데만 83분의 러닝타임이 가쁜 호흡으로 꽉 찬다.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사회에 잠재해 있는 폭력의 면면들을 촘촘히 보여준 신인 감독의 연출력이 범상치 않다. 조금씩 자신의 폭력적 본성과 마주하게 되는 주용역의 이가섭을 비롯해 일상적 대사에 비일상적인 긴장감을 담아낸 다른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올해 주목해야 할 독립영화 중 한 편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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