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촛불정신과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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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2   |  발행일 2017-11-02 제30면   |  수정 2017-11-02
'적폐청산이 촛불정신' 주장
과함은 미치지 못함과 같아
열광하는 국민들이
싫증 느끼는 기간 길지않아
역사가 뒷걸음칠까 우려돼
[차명진의 정치풍경] 촛불정신과 적폐청산

촛불혁명 1주기입니다. 시민혁명의 모델인 프랑스혁명과 촛불혁명 사이에는 그 강도는 다르지만 진행과정에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첫 단추는 루이 16세가 눌렀습니다. 미국 독립혁명을 지원하느라 재정에 바닥이 난 그는 면세대상이었던 귀족과 성직자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평민의원들은 자신들이 과소 대표되고 있음에 불만을 갖고 귀족들을 배제한 국민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굶주린 민중은 점차 과격해져서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했고, 베르사유 왕궁 습격,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처형 등의 파괴적 사건을 벌입니다. 의회도 과격해져서 강경파가 분화해 더 강경한 파벌이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혁명 4년, 국민들은 혁명의 과격함에 넌더리를 쳤고 외침을 잘 막아낸 나폴레옹 장군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왕정을 복고시킵니다.

촛불혁명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폭로되자 이를 개헌 논의로 덮으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도를 간파한 민중들의 분노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시위대의 하야 요구를 거절했고 시위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갔습니다. 야당 지지자만이 아니라 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까지 참여했고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는 범국민적 집회로 발전했습니다. 급기야 야당의 탄핵요구에 여권 내 이탈세력까지 동조했고 탄핵안이 가결됐습니다. 정권은 교체됐고 촛불이 꺼졌지만 촛불정신은 오히려 과격해졌습니다. 촛불의 해석권을 독점한 새 대통령은 적폐청산이야말로 촛불정신의 계승이라고 천명했습니다. 전 정권에서 시작해 전전 정권, 심지어 보수정권의 출발지점까지 적폐청산의 명분하에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하면 미치지 아니함만 못합니다. 열광하는 국민들이 싫증을 느끼는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역사가 뒷걸음칠까 우려됩니다. 프랑스혁명은 왕정복고로 마감됐고 처음의 참신했던 구호는 그 후 200년이 넘도록 역사 속에 묻혀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없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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