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정모씨(75·대구 중구 남산동)는 최근 외출을 꺼리고 있다. 어릴 때 사고로 잃은 시력에도, 오랫 동안 바깥활동에 열성이던 그가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8월 하순 어느 날, 정씨는 중구 반월당에서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고령에다 시각장애 1급인 그가 도우미 없이 외출을 하려면 지팡이와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이 필수다. 시각장애 1급은 ‘좋은 눈의 교정시력이 0.02 이하로, 가까운 물체도차분간하기 어려운 장애’를 일컫는다.
그 날, 점자블록과 지팡이에만 의존해 길을 걷던 정씨가 난관에 부딪힌 것은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점자블록을 따라 걷던 그의 앞에 차량이 주차돼 보행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것. 몇 차례 차량에 부딪혀 넘어진 그는 결국 분통이 터져 들고 있던 지팡이로 차량을 내리쳤다.
문제는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거졌다. 경찰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고지서가 그에게 발송된 것. ‘둔기를 이용해 기물을 파손했다’는 내용이다.
정씨는 “화를 못참고 차량을 훼손한 것은 분명히 잘못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점자블록에 차량을 주차한 것 또한 불법이지 않느냐”며 “구청에 단속 민원을 넣어도 그때뿐이다. 나같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록은 ‘생명의 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정씨는 점자블록에 주차된 차량을 지팡이로 파손해 몇차례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30일 재판을 앞두고 있는 정씨는 “이번에 파손된 차량이 고급 외제승용차라고 한다. 상대방 변호사가 지팡이를 둔기로 칭하고 있는 만큼, 이전보다 더 많은 벌금이 부과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장애인 이동편의 증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m 이상 도로엔 점자블록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이를 지자체 등에서 관리해야 한다. 다만 점자블록 내 주·정차는 통상 불법 주·정차 단속과 함께 적발해 처벌하고 있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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