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프렌치 불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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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8   |  발행일 2017-10-28 제23면   |  수정 2017-10-28
[토요단상] 프렌치 불도그
노병수 칼럼니스트

19세기 초 영국에는 ‘불 베이팅(bull baiting)’이란 고약한 풍습이 있었다. 말 그대로 ‘황소를 골려먹는 놀이’인데 내용이 자못 잔인하다. 소를 30피트 가량의 줄로 말뚝에 묶어두고, 투견(鬪犬)을 시켜 물게 한다. 소가 쓰러질 때까지 놀이는 계속된다. 이 게임에 출전하는 사나운 개가 바로 불도그(bulldog)다. 불 베이팅은 당시 “소를 괴롭힐수록 육질이 좋아진다”는 속설에 따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개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맛이 있다”는 말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불 베이팅’은 1835년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자 불도그의 효용가치가 사라졌다. 심술궂은 얼굴, 땅딸막한 체구에다 사납기까지 하니 애완견으로서도 낙제다. 그래서 한 때 불도그는 멸종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이 개가 프랑스로 건너와 퍼그, 테리어 등과 교배를 통해, 몸집이 작고 양순한 ‘프렌치 불도그’로 다시 태어나자 얘기가 달라졌다. 순식간에 인기몰이를 했다. 프랑스 상류사회 여성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 찾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프렌치 불도그는 인기가 높다. 모습은 불도그와 흡사하지만, 양순하고 앙증스러운 모습에 오뚝한 귀를 가지고 있다. 명랑한 성격에 장난이 심해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거의 짖지를 않아 아파트같은 공동주택에서 키우기 딱 좋다. 훈련을 시키면 번견(番犬)으로도 가능하다. 덕분에 애견가게에 가면 한 마리에 1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싼 값을 부른다. 그 프렌치 불도그가 사고를 쳤다.

얼마 전 서울 유명음식점 ‘한일관’ 여사장 김은숙씨가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씨 가족의 반려견 ‘벅시’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숨졌다. 벅시가 바로 프렌치 불도그다. 자기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물렸으니 그런 황당한 일이 없다. 한일관이 어떤 곳인가. 한일관은 역대 대통령들과 모두 인연이 있다. 한일관 음식에 반한 박정희 대통령은 종종 청와대로 출장요리를 불렀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시절 김영삼 총재 당선을 위해 그 유명한 지지연설을 한 곳도 한일관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육개장’이 여기서 나왔고,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도 단골이란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도 한일관 불고기 얘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집이다.

한일관은 창업주 신우경 할머니가 일제 치하에서 ‘화선옥’이란 장국밥 집을 개업한 것이 효시였다. 2대 주인은 그의 딸 길순정 할머니다. 경기여고를 나와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가업을 잇기 위해 의사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3대 주인이 바로 이번에 변을 당한 김은숙씨다. 이화여대 불문과를 나와 파리3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인텔리다. 50대 초반 한창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프렌치 불도그는 맹견(猛犬) 축에도 들지 못한다. 도사견을 비롯해서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로트바일러 같은 진짜 맹견들은 가히 치명적이다. 한 번 물면 죽어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같은 나라는 ‘맹견법’을 제정, 맹견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인명 사고를 낸 개의 주인에게 최고 14년의 징역형을 내린다.

요즘처럼 혼자 살아가는 ‘혼족’들이 늘어나는 세태에 반려견은 삶의 동반자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개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우리 개는 절대 안 물어요”라고 말한다. 그건 주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개는 문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개는 본능에 충실한 한 마리의 동물일 뿐이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맹견법안 통과도 시급하지만, 제발 외출할 때 목줄 좀 바투 잡고, 개똥 좀 제대로 치우자. 노병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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