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내 친구 정일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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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7   |  발행일 2017-10-27 제42면   |  수정 2017-10-27
하나 그리고 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러브레터’를 닮은…시한부 소녀의 사랑


20171027

눈살이 찌푸려지는 제목이다. 그러나 충분히 호기심을 끈다. 혐오스럽게 받아들일 관객들이 있을 줄 알면서도 용감하게 이런 제목을 고수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화가 멜로드라마라는 걸 아는 순간 내용이 궁금해진다. 놀랍게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이 영화에서 사랑의 고백이다. 아주 은유적이면서도 로맨틱한 고백. 여기에 관객들의 심장이 반응하는 데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대단히 새로운 설정이나 인물 없이도 사랑과 죽음이라는 단어를 붙여 놓고 영화는 또 한 편의 절절한 멜로드라마를 완성시킨다. ‘하마베 미나미’와 ‘키타무라 타쿠미’, 두 주연 배우의 풋풋한 매력이 익숙한 장치들을 적절히 덮어주며 영화적 설정에 몰입하게 한다.


츠키카와 쇼 감독, 日 멜로 고전 ‘러브레터’ 오마주
하마베 미나미·키타무라 타쿠미 풋풋한 연기 매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감독 츠키카와 쇼)는 일본 멜로드라마의 고전이 된 ‘러브 레터’(감독 이와이 슌지)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 차 있다. ‘나’와 ‘사쿠라’가 같은 도서부원으로서 서가를 배경으로 교감하는 설정부터 러브레터와 일치한다. 후반부에서 사쿠라가 빛이 밝게 들어오는 커튼 앞에 있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러브레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즉 남학생 ‘후지이 이츠키’(가시와바라 다카시)가 여학생, ‘후지이 이츠키’(사카이 미키)의 시점에서 창문과 커튼 사이에 있다가 보일 듯 말 듯 사라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도서카드에 비밀이 숨겨져 있고, 그것을 성인이 된 ‘나’가 발견하는 설정에서도 러브레터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주인공의 이름, ‘사쿠라’는 ‘벚꽃’이라는 의미로, ‘러브레터’에서 죽음을 상징한다고 언급된 바 있다. 일종의 복선인 셈이다. 화면도 노출 설정과 필터를 통해 보얗게 보이도록 연출해 ‘러브레터’의 톤 앤 매너를 떠올리게 한다.

‘러브레터’를 벗어난 이 영화의 특수성은 역시 과격한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이 ‘너의 일부가 되고 싶어’ 혹은 ‘네가 되고 싶어’, 나아가 ‘사랑해’의 다른 표현인 것처럼 두 사람은 타인과 다른 방식, 독특한 언어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교적인 사쿠라는 ‘나’의 울타리 안으로 조금씩 들어오면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주고, ‘나’는 사쿠라의 억지스러운 부탁들을 묵묵히 들어주며 그녀가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갈 수 있게 해준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 하던 그들은 결국 동시에 고백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그 원시적, 혹은 고차원적 고백이 미처 서로에게 닿기 전에 두 사람은 이별을 맞이하고 말지만, 적어도 ‘나’의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함께 몸의 일부처럼 그녀의 존재가 남아 있다.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로맨틱 멜로드라마의 자리를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영화들이 채워나가는 현상은 주목해 볼 만하다. 매번 새롭지는 않아도 ‘설렘’이라는 감정을 그럴 듯하게 제조하고 다뤄내는 요령이 부럽다. 사회고발성 영화와 범죄액션물의 쓴 맛 매운 맛도 많이 보았으니 이제 달콤쌉싸름한 영화가 나올 때도 됐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내 친구 정일우
‘판자촌의 예수’ 故 정일우 신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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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을에 개봉해 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울지마 톤즈’(감독 구수한)는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를 변화시킨 고(故) ‘이태석’ 신부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환자를 고쳐주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건물까지 지어주던 이태석 신부는 마흔 여덟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은 톤즈와 관객들의 가슴 속에 아직 남아 있다. 김동원 감독의 ‘내 친구 정일우’는 판자촌의 예수라 불리던 정일우 신부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타향에 대한 한 외부인의 헌신과 사랑이라는 주제가 ‘울지마 톤즈’와 맥을 같이 한다.

이태석 신부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보다 많은 힘을 쏟았다면, 정일우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한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1960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2014년 임종할 때까지 판자촌과 강제철거촌, 농촌 등을 다니며 구제에 힘썼다. 양평동 판자촌 생활을 시작으로 1977년 복음자리, 97년 한독주택, 85년 목화마을을 건립하는데 앞장섰으며, 80년대에는 목동, 상계동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운동에 함께 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충북 괴산군에서 누룩공동체를 이루고 농민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


군부독재 때부터 韓 현대사 함께한 파란 눈의 신부
꾸밈없는 소박한 형식 돋보이는 김동원 감독 다큐



교인들 뿐 아니라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일들이기에 그의 선행을 굳이 특정 종교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일우 신부는 그가 믿었던 예수의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고, 이는 파렴치한 범죄로 종종 미디어를 달구는 종교 지도자들과 대비된다.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며 불의와 싸웠던 그의 모습은 엘리트주의와 기회주의에 물든 동시대의 교계에 일침을 가한다.

‘내 친구 정일우’는 정일우 신부의 삶처럼 소박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울지마 톤즈’가 후반부 연출했던 일종의 최루성 드라마도 거부한다. 정일우 신부 생전의 모습을 담은 영상 사이사이에 주변인들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고, 그 위로 아마추어 내레이터들의 목소리가 흐르는 것이 구성의 전부이며 어떤 장식도, 꾸밈음도 없다. 이러한 형식은 정일우 신부의 삶 자체를 부각시키고, 만든 이들의 진정성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군부독재시절부터 21세기까지 한국현대사의 음지에서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파란 눈의 신부, 정일우를 더 깊이 알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8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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