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핫플레이스 - 식물원카페 ‘시크릿가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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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7   |  발행일 2017-10-27 제41면   |  수정 2017-10-27
꽃차의 色·香·味…팔공산 사계를 오감으로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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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멀리 보이는 시크릿가든. 스위스 요들송처럼 싱그럽고 풋풋하게 느껴진다. 이 가든은 올해 경북도 1호 민간정원으로 선정됐다. 작은 사진은 이동통신사업자에서 식물원카페의 으뜸머슴으로 인생 2모작을 성공시키고 있는 하영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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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에서 직접 채집한 맨드라미와 목련차를 정성스럽게 덖어 만든 수제꽃차는 이 집의 명물이 됐다.

팔공산 자락에 앉아 있는 식물원카페 ‘시크릿가든’. 요즘 팔공산 자락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일단 현장부터 확인해보자. 칠곡군 동명면 기성삼거리에서 한티재 쪽으로 올라가다가 새로 확장·포장된 득명리 쪽으로 우회전. 도로변에 잡풀처럼 앉아 있는 이정표가 보였다. 산 아래로 50m 내려갔다. 피노키오처럼 생긴 빈티지 고철인형이 주차장에 장승처럼 앉아 있다. 차를 세워놓고 더 아래로 내려갔다. 첫인상은 일단 합격. 산중 식물원이 하나의 나무 같다. 숲은 이파리, 카페는 한 덩어리 꽃 같다.

무지개다리 같은 작은 돌다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 바로 오른쪽 구석자리엔 적당한 폭의 왕대나무숲이 수직본능을 뽐내고 있었다. 대나무 숲과 한 호흡 거리에 있는 동쪽 산자락엔 은사시나무 수십 그루가 차렷 자세를 하고 있다. 그 밑동을 붉게 감고 있는 담쟁이덩굴은 은사시나무에게 주는 빨간 머플러 같다. 은사시나무와 대나무 사이에 카페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S자형 작은 개천, 그 옆에 미니축구장만 한 잔디밭광장, 그 언덕 너머에 별별 꽃들이 존별로 구획관리되고 있었다. 가능한 한 콘크리트를 덜 입히고 막돌과 흙만으로 공간을 치장한 것 같다. 좋은 햇살을 무릎에 앉힌 비치파라솔 아래 연인들이 수제 꽃차를 마신다. 한 잔에 9천원.

칠곡 동명 득명리의 9천900㎡ 식물원
하영섭 원장, 20년前 착공후 우여곡절
꽃값만도 수억원 들여 350여 樹種 안착
부족한 운영비에 2년前 카페부터 오픈

직접 만든 맨드라미·이슬차 등 인기몰이
꽃밥·갖은 열매 웰빙주스도 만들 계획
지난 5월 경북도 민간정원 1호 지정 경사


◆원장이 아니라 난 머슴

이 일 저 일 쳐내느라 너무 바빠 보이는 하영섭 원장(63). 그는 이곳의 으뜸머슴. 도무지 원장 같지 않다. 그게 감동적이다. 그가 카페 앞 감나무에서 감을 하나 따서 접시에 먹기 좋게 깎아 내온다. 솔직히 난 그가 식물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인사를 하면서 내미는 풋풋한 미소의 격조가 남달랐다. 9천900㎡(3천평) 식물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억하고 있는 듯한 검은색 장화, 그리고 군복 바지, 빛바랜 감청색 티셔츠, 구릿빛으로 내려앉은 표정…. 20여년 숲속에 시달린 끝에 체득한 잘 구운 호밀빵 같은 미소랄까.

그에게 이 공간은 꿈이지만 실은 ‘일투성이’의 공간이다. 일에서 일어나 일 속에서 잠이 든다. 주변인들은 꿈속에서 일어나 꿈속에서 잠들 거라고 믿는다. 세상사란 보기에 따라 극과 극의 틈을 보여준다. 여유로운 차 한 잔? 오직 여길 찾은 단골만의 전유물이다. 솔직히 그는 취재를 위해 잠시 차를 한 잔 마시는 것도 불편해했다.

그가 꽃차를 타주면서 고단했던 지난 시절을 풀어낸다. 경주 골굴사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대구로 왔다. 대륜중·고를 나오고 영남대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지만 엉뚱하게도 이동통신사업 외길을 걷는다. 초창기 벽돌만 한 모토로라 휴대전화, 삐삐 등을 유통시키며 <주>한국텔레폰을 통해 적잖은 돈을 벌었다. 이 업종에선 선두권이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갑자기 어릴 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향 마당에 심긴 꽃과 나무가 그리웠다. 부모는 7세 된 그에게 자기 몫의 정원을 내주었다. 잠재의식 속에 식물원장의 유전자가 그때 형성된다. 파산의 절망이 오히려 전원행의 간절함으로 커간다. 사업할 때도 틈만 나면 괜찮은 식물원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다들 1%가 부족했다. 너무 꾸몄거나 너무 빈약했다. 급기야 제대로 된 식물원 만들기에 나선다.

◆사라진 손금

식물원,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있어야 할 것, 개발이 덜 된 곳, 주위에 묘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데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후배가 팔공산에서 카페 오픈할 때 우연히 지금 이 땅을 봤다. 찾아다닌 지 5년 만이다. 당시만 해도 득명리는 오지 중 오지였다.

1998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축대를 쌓고 잡목을 베어내고 기본 토목공사에만 6~7년 걸렸다. 그는 꽃이 없는 겨울이 늘 불만이었다. 자기 식물원만은 겨울꽃이 가능토록 하고 싶었다. 궁합이 맞는 꽃 찾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괜찮다 싶어 심어놓으면 한여름에는 녹아내리고 한겨울에는 얼어죽었다. 어떤 수종이 잘 어울리는지 채종을 하고 재파종을 하면서 생태를 정밀하게 관찰했다. 귀한 식물인 크리핑타임도 착근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겨울 영하 15℃ 혹한에 반 이상 동사해버렸다. 15년간 꽃값으로만 수억 원이 들어갔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아까워 언덕에 식물연구동을 겸한 임시 움막집을 만들었다. 10년은 시내에서 오갔고 그다음 10년은 거기서 먹고 잤다.

매일 돌과의 전쟁이었다. 지게로 크고 작은 돌멩이를 져 날랐다. 무른 습지는 돌로 다지고 허물어진 길은 자갈로 단단하게 엮고 축대를 쌓았다. 대숲도 인위적으로 조성해 수분공급이 원활토록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기존의 개천은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그것과 짝이 될 만한 실개천을 여기저기에 파놓았다. 잔디밭은 ‘골병밭’이었다. 하절기엔 돌아서면 잡초였다. 그걸 제거하느라 온몸은 파김치가 됐다. 어느 5월 언덕 한쪽이 크리핑타임꽃으로 물들었다. 감격이란 그런 것이다. 꽃잔디, 무늬쑥부쟁이, 청화쑥부쟁이, 능수느릅나무, 아스카국화 등을 차례로 심었다. 잔디밭도 하트형으로 만들었다. 그네를 달았다. 전망대도 만들었다. 사슴 모양으로 마삭줄을 키워냈다. 가을이 되니 미국산딸나무의 단풍이 너무나 고혹했다. 사진을 찍어 지인한테 보내주었다. 하지만 다들 시큰둥했다. ‘정신 나간 친구’로 간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길흉사도 등졌다. 개인의 일상은 완전 반납이었다. 꽃과 나무의 삶을 살기로 한 자만의 혹독한 통과의례랄까.

태풍 매미·루사 때 이 식물원은 급살을 맞았다. 보험도 들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모든 게 날아갔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다시 끊어진 길을 잇고 허물어진 축대를 쌓았다. 어느 날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으러 갔을 때였다. 담당자는 너무 과도한 노동 탓에 손금이 지워진 그의 손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 시크릿가든 경북도 1호 민간정원

좋은 일이 있었다. 시크릿가든은 지난 5월 수목원 정원 조성 및 진흥법에 의거해 경북도 민간정원 1호로 지정됐다. 원예학, 조경학, 건축학, 식물학, 이 네 가지를 동시에 핸들링했기에 가능했다. 500여종을 실험한 끝에 이 땅에 맞는 수종 350여종을 찾았다. 문제는 운영비였다. 근처 84세 어르신이 그와 파트너가 돼 도와주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식물원카페다. 카페 건물은 원래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일단 꽃차 전문 카페로 가고 싶었다. 맨드라미와 목련차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식물학은 알아도 차를 만드는 걸 다시 공부해야 했다. 처음에는 식물원만 만들 계획이었는데 계획이 수정됐다. 일단 2년 전 카페부터 열었다.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명품 식물원이 완성되면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카페부터 먼저 열게 돼 입장료를 포함시켜 찻값을 좀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목련꽃은 저온에서 전처리를 해야 한다. 일반 목련차는 모양은 좋아도 향이 센 게 흠이다. 저온에서 갈무리하면 향도 은은해진다는 걸 알았다. 고혹적인 붉은색이 인상적인 맨드라미차는 꽃을 7~8번 덖어서 수분을 갈무리한 뒤 건조해서 병에 보관해 사용한다. 이 밖에 국화차, 이슬차, 생강차, 우엉차, 매화차 등도 판다. 여건이 된다면 이 가든의 꽃과 열매로 꽃밥도 만들고 갖은 열매로 웰빙주스도 만들고 싶단다.

고생만 한 아내의 얼굴에도 점점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한때는 남편의 ‘식물원 타령’이 그렇게 야속했단다. 2년 전 현장을 둘러본 뒤부터 남편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이젠 그의 선택이 더 현명했다고 인정해준다. TV도 없다. 오전 5시에 가든에 나와 밤 10시에 잔다. 지금은 내년에 피워낼 꽃을 설계한다. 패션디자이너처럼 한 계절을 서둘러 산다.

어쩜 이 가든 자체가 눈으로 먹는 차 한 잔 아닐까 싶다. 그는 폭설의 날을 기다린다. 손님도 끊어질 것이다. 이때 꽃차의 향을 거머쥐고 잠시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으리’란 하이네의 시를 음송할 수 있을 것이다. 칠곡군 동명면 득명2길 97-21. (054)975-058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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