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방송국 파업의 틈바구니에서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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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7   |  발행일 2017-10-27 제39면   |  수정 2017-10-27
라디오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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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MBC 방송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지면에 실리는 사이에 어떤 실마리가 풀리면서 파업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번 파업은 그동안 뒤죽박죽 쌓인 여러 문제가 얽힌 터라 완전한 타협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관해 독자들도 각자의 견해가 있을 것 같은데, 대중문화의 현재를 소개하는 이 코너에서 방송언론 파업의 시시비비를 논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것과 상관없이, 파업에 의한 비정규 편성에 시청자며 청취자인 내가 점점 적응해가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KBS·MBC 파업에 의한 비정규 편성
라디오 음악프로그램도 재방 위주 변화
매력적 콘텐츠가 그나마 이런 상황 위안

휴식 기능·소통공간 등 라디오 장점들
특화된 목적의 팟캐스트 방송도 있지만
허브콘텐츠는 여전히 기존 라디오 방송



이전에도 밝힌 바대로, 9월 초 눈 수술을 받고서는 볼거리, 읽을거리를 될 수 있는 한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TV 시청보다 음악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라디오도 곧잘 듣는데, 두 방송국이 송출하는 음악프로그램에도 큰 변화가 있다. KBS FM은 재방송 위주로 하루하루가 넘어가고 있으며, MBC FM은 별도의 진행자 없이 음악만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편성이 마냥 좋을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중교통 파업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리 불편한 것도 아니며, 듣는 이에 따라서는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KBS 라디오의 재방송 프로그램 중에는 내가 자주 듣던 ‘장일범의 가정음악실’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 ‘이미선의 당신의 밤과 음악’도 끼어있다. 주로 출근시간에 자동차에서 듣는 장일범의 가정음악실은 대중적인 고전음악 선곡도 좋은 데다가 진행자의 밝은 목소리가 아침시간에 어울려 자주 듣는다. 그런데 장일범씨에게는 고치기 힘든 버릇이 있다. 클래식음악 고유명사 중에 ‘카’ ‘파’ ‘차’ 같은 거센소리는 물론 ‘가’ ‘다’ ‘바’ 같은 예사소리로 된 자음까지 ‘까’ ‘따’ ‘빠’ 식의 된소리로 발음하는 습성이다. 방송을 들어보면 영어권이 아닌 외래어를 말할 때, 예컨대 고르곤졸라 피자를 ‘꼬르꼰쫄라 삣짜’로 발음하곤 한다. 이쯤이면 영어권이 아닌 한국말도 대구를 ‘때꾸’로 발음하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명연주 명음반의 정만섭씨는 다 좋은데 목소리에서 졸림이 전해진다. 왜 학교 다닐 때 인간수면제란 칭호를 부여받은 선생님처럼 말이다. 사석에서는 매우 허물없고 재미있는 분이라는데, 믿기지 않는다. 은근히 권위적이고 재미없는 사람이란 심증이 간다. 이런 목소리를 밤낮으로 재탕해서 들어도 또 듣게 되는 것은 콘텐츠의 매력, 즉 음악이 좋기 때문이 아닐까.

이 점에서는 MBC FM이 다르다. 아니, MBC 방송은 더 무너졌다. 라디오는 DJ의 말이 생략된 채 음악만 계속 틀어준다. 그래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가 뭔가 하니까, 파업 이후 라디오를 더 자주 듣는다는 말이다. 누가 선곡을 하는지 약간 세월이 흐른 80~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레퍼토리에 감탄이 이어진다. 파업이 끝나더라도 지금 선곡을 맡은 사람에게 PD나 작가 자리를 따로 떼어주고 한 프로를 맡기는 게 어떨까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지난 추석 연휴에 누워서 계속 들어본 결과, 이 선곡에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건 수십 곡을 뭉텅이로 골라서 깔아놓고 계속 돌리는 방식이었다. 이걸 약점이라 하면 부정할 순 없겠는데, 단골 커피 집에 가서 늘 듣는 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나로서는 딱히 불만은 없다. 그동안 음악을 들려주는 방송에서조차도 진행자와 게스트란 사람이 얼마나 쉴 새 없이 공해 같은 이야기를 뱉어내었는지, 파업 결방에 대한 임시방편을 도리어 반기는 지금의 반응을 방송국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아, 물론 멘트 없이 음악 위주로 편성하는 별도의 라디오 채널은 방송사별로 이미 있으니까, 혹시나 몰랐던 분은 참조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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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엉뚱하게 일으킨 파문은 라디오의 시대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라디오가 청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좋은 점을 꼽아보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첫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안정을 취하거나 밤엔 잠을 청하는 휴식의 기능이 있다. 둘째, 반대로 정신을 가다듬고 능률을 올리고 잠을 쫓는 각성의 기능도 있을 것이다. 셋째, 혼자 있는 곳에서 외로움을 달래거나 캄캄한 밤에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듣는 라디오도 정말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다. 마지막으로 라디오에서 얻을 수 있는 쓸모 있는 정보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아닌 비교적 소수 청취자만이 정보를 나누는 소통공간 구실도 있다. 라디오가 가진 이 모든 장점은 팟캐스트가 나누어 흡수해서 좀 더 특화된 목적에 걸맞은 청취자 시대를 열었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런 팟캐스트 방송조차도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을 허브콘텐츠로 삼은 게 많다는 사실이다. 방송 생태의 미래상이 어떨지 섣불리 예단하긴 힘들다. 하지만 수년간은 라디오와 팟캐스트, 그리고 라디오 애플리케이션, ‘보이는’ 라디오 등이 공존하는 환경을 우리가 즐길 거란 사실은 틀림없다.

즐기거나 꺼리는 건 취향이 걸리는 문제다.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취향의 문제를 중하게 봐왔다. 어떤 미국의 예술사회학자들은 폐차장에 쌓인 승용차들을 통해 사회 계급과 취향 사이의 상호관계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들은 차를 폐차업자에게 맡기기 전 마지막으로 맞춰져있던 라디오 채널을 기록하고(미국은 채널별로 전문 음악 장르가 나뉘어 있는 방송환경) 자동차에 따른 소득 격차를 참고로 하여, 부자는 어떤 음악 취향을 가지고 가난한 자는 어떤 음악 취향에 맞춰져 있는지에 관해 관찰했다. 물론 여기에도 연구 오류는 벌어지는데, 고급 리무진은 차주 대신 운전을 하는 기사 취향을 따를 가능성 같은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아날로그 채널로 작동되는 라디오는 자동차에 달려 나오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그와 같은 사회학 연구는 20세기 업적으로 남을 따름이다.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파업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 분배의 당위성 혹은 부당성이 그렇고 또 한 가지, 그 음악과는 별도로 전해지는 DJ 배철수의 어눌한 듯 친근한 목소리. 장일범의 짐짓 멋 부린 발음, 정만섭의 고리타분한 목소리.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신하더라도 사람이 맡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파업도 사람이 발단이 되었고,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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