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제 멋대로의 날

  • 최은지
  • |
  • 입력 2017-10-23 08:08  |  수정 2017-10-23 08:08  |  발행일 2017-10-23 제18면
“아이들은 신나게 놀면서 친구·이웃·세상을 배웁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놀았던 기억
제대로 놀아야 몸도 마음도 성장
골목 놀이터 만들기 함께 나서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제 멋대로의 날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오래전에 우리 반에서 학급 재판을 열어 스스로 잘잘못도 가려보고 잘못에 대한 벌도 정해보고 했습니다. 그 때 우리 반 남자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벌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놀지 못하게 하는 거였습니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그 벌을 두고 사형이라고 했을까요. 그다음으로 싫어하는 벌은 둘째 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을 빼앗아 놀지 못하도록 하는 벌이었습니다. 이 역시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벌이었습니다. 둘째 시간 마치고 쉬는 시간은 20분으로 다른 쉬는 시간보다 길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토록 남자아이들이 점심시간이나 둘째 수업 마치고 쉬는 시간을 좋아했나하면 축구를 하려고 그랬어요. 우리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편을 갈라 축구를 했어요. 그러다가 들어갈 종이 울리면 너무나 아쉬워하는 모습으로 교실로 들어가곤 했어요. ‘에이 벌써 들어갈 종이야’ 이러면서 말입니다. 지켜보는 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 종일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6학년 선생님들과 교무실에서 의논을 했습니다. 6학년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제 스스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 멋대로의 날을 만들어보자고요.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설계하여 써보도록 하자는 뜻에서지요. 또 그 계획과 실천 과정에서 창의성과 협동심도 기대를 했지요. 먼저 6학년 아이에게 그런 시간을 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대환영이었습니다. 일단 한 번 해보기로 하고, 6학년 선생님들과 제 멋대로의 날을 보내는 규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장소는 학교 안으로 하고 교문 밖으로는 나가지 않도록 한다. 둘째,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본관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셋째,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모둠끼리 한다. 넷째, 도서관이나 과학실 같은 실내 활동은 안 된다. 다섯째, 담임은 도움 요청에 대비해서 언제나 교실에서 대기한다. 여섯째, 제 멋대로의 날을 마치고는 반드시 아이들과 이야기 시간을 가져서 평가 반성을 하는 기회를 갖는다.

아이들 반응을 보아가며 괜찮다 싶으면 다른 학년까지 넓히고, 기간도 늘려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제 멋대로의 날, 교문에 들어서는 6학년 아이들 얼굴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출렁거렸습니다. 아침부터 넓은 운동장과 앞뜰에는 6학년 세 반 아이들로 넘쳐났습니다.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관심 깊게 살펴봤습니다. 운동장에 볼 일이 있는 척 하면서 천천히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축구를 하는 아이, 농구골대에 공 넣기를 하는 모둠, 돗자리를 펴놓고 드러누워 노는 모둠 등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돗자리를 펴놓고 모둠끼리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놀이를 하는 모둠이 가장 많았습니다. 어떤 모둠은 카드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렇게 복작되던 운동장 가운데가 텅 비어버리더란 겁니다. 운동장을 차지하려는 다툼이라도 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그건 정말 헛걱정이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를 한나절도 채 안 된 시간에 끝내고 말았습니다.

“왜 축구를 하지 않니?” 이렇게 물어보았지요. “더워서요.”

“다른 날은 더워도 축구를 했잖아?” “이야기 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

돗자리를 펴놓고 하는 이야기마당도 시들했던지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빈둥거렸습니다. 제멋대로의 날을 마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나온 아이들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별로 재미가 없어요.” “뭘 할지 몰라요.” “의견이 잘 맞지 않아요.” “시간이 지루했어요.”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어요. 아주 시들한 대답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놀 줄 모릅니다. 오징어나 사다리 놀이처럼 땅에 금을 그어놓고 노는 모둠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 먹는 것까지 잊어버리고 놀던 골목놀이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몇몇 모둠이 말뚝박기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큽니다. 놀면서 친구와 관계를 배우고 이웃을 배우고 세상을 배웁니다. 제대로 놀아야 마음도 자라고 몸도 자랍니다. 학교 운동장과 우리 마을 골목을 아이들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어른도 어린이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윤태규<전 동평초등학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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