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이재하 삼보모터스<주> 대표

  • 이은경,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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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1 08:30  |  수정 2017-10-21 08:30  |  발행일 2017-10-21 제22면
“車 부품시장 선도, 핵심기술 연구개발에 달려…전기차 등 트렌드 변화 적극대응”
이재하 삼보모터스 대표가 주 생산품목인 파이프 부품과 오토 트랜스미션을 소개하며 사업초기 부터 이어온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주일무적(主一無適), 한 가지에 집중하여 잡념을 버리는 일. 이재하 삼보모터스<주> 대표의 집무실에 걸린 글귀다.

“쑥 캐 봤어요? 이곳 저곳 쑥이 더 많이 난 듯 보이는 곳을 따라 옮겨다니다보면 분주하기만 할 뿐 쉽게 바구니를 채우기 어렵습니다. 한 곳에서 묵묵히 쑥을 캔 사람의 바구니는 어느새 가득 차 있습니다. 나무꾼도 이 산 저 산 나무 찾아 돌아다니다보면 나무 한 짐 못하고 날이 저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 자리에서 딴 생각 않고 제 할일을 묵묵히 하자는 다짐으로 걸어 둔 글귀입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눈 앞에 보이는 퇴계의 이 글귀를,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40년 세월이었다. 1977년 대구3공단 삼협산업에서 시작해 평생 자동차 부품 생산의 외길을 걸어온 이 대표는 그렇게 삼보모터스를 종업원 3천여명, 연매출 1조3천억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놨다.

그런 이 대표에게도 지금의 위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산업 전반엔 불황의 그림자가 짙고, 경기 회복의 전망은 어둡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둔화되면서 자동차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세계 경기 위축에 따른 이같은 자동차 수출 부진은 자동차 부품 시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경북을 먹여 살리는 대표 산업인 자동차 부품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이유다.

국내 車 자동변속기 부품 80% 점유율
종업원 3천명·年 매출 1조3천억 성장
“매번 위기 오지만 직원들 힘모아 극복
매출 5%이상 연구개발 투자 미래준비
기술저력·변화 읽으면 불황 안 두려워”

“완성차업계 해외진출 늘려 타격 불가피
꾸준한 기술개발로 5년뒤 먹거리 찾아”


▶산업 전반의 불황이 심각하다. 지역 자동차 부품업계는 어떤가.

“제가 40년 경영하는 동안 한 번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계 굴지 기업이라는 삼성조차도 거의 매년 위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늘 긴장의 끈을 놓지않으려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해선 안된다. 역경은 성공으로 가는 계단이다. 다년간 투자로 쌓아올린 기술 저력과 산업 트렌드 변화를 읽어내는 정확한 분석력이 있다면 글로벌 경기불황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산업은 이미 저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고급화다. 제품의 고급화를 위해서는 기술과 문화 전반의 수준 향상이 이뤄져야 한다. 끊임없는 연구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1차 협력 업체는 물론 2, 3차 업체들도 연구개발을 확대해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을 더 잘 만드는 일과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는 일은 결국 연구 개발에 달렸고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제품 혁신이나 생산기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고등학교 미술 교사였다. 포항의 한 고교에 부임해 교편을 잡았지만, 3년 만에 그만뒀다. 학교 생활이 성격과 맞지 않았다고 했다. 기계 금속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보여 이 분야의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자본도 기술도 연구 인력도 부족했다. 살아남기 위해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를 했다. 그렇게 조금씩 쌓인 기술력은 1994년이 되어서야 빛을 보게 됐다. 당시 상공부 지정 국산화 대상 품목이던 자동변속기 정밀부품 개발을 성공해 양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삼보모터스의 주 생산품목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파이프 부품과 오토 트랜스미션의 정밀 프레스 제품이다. 국내 자동차 자동변속기 부품 분야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기업이다. 현대 기아차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와 포드, GM, 닛산, 혼다 등에 납품하고 있다. 일본, 북미 수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는다. 전기차, 자율주행차같은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기차용 모듈화 부품인 감속기를 생산한데 이어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인 EGR 시스템 개발에 나서 전기차 핵심 부품 분야를 선점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부품은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전기차인 맥서스에 1만대 넘게 납품되고 있다.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듯하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현주소는 어디쯤인가. 같은 제품 그룹군 가운데 포지션은 무엇인가. 고객 수요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가. 우리 제품이 앞선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기초해 앞으로 5년 후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시장을 만들고 선도해나가는 것, 연구 개발이 해야 하는 일이다. 사냥꾼에 비유하자면 활 들고 노루를 쫓아다니다가는 한 마리도 못 잡는다. 길목을 막고 기다렸다가 내려오는 노루를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 제품의 기술은 뛰어나다. 잘 만들고 잘 베끼고. 하지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핵심 기술력을 갖고 있지 못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지 못한다. 연구개발이 가능한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삼보모터스가 아무리 어려워도 전체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다.”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 개발에 비용을 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보쉬의 경우 연구원만 5만명이다. 그런 기업들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을 좌지우지한다. 여기서 부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차를 만들수 없다. 그런 것들은 대기업에서 해 줘야 한다. 박사 한두명으로 연구 개발이 되겠나. 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반기업 정서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규제가 그래서 문제다. 이래서는 기업이 클 수 없다.

기업의 경영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도 문제다. 임금이 오르고 비용이 늘면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 공장이전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일본은 제조업체들이 리턴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제도를 만들면서 노사문화도 안정되어 있다.”

이 대표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회사가 크게 어려웠다. 이 대표는 그때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야기도 꺼내기 싫을 정도라 했다.

“산을 타는데 정상에 올라가려면 누구나 고되고 힘들게 마련이다. 중도에 피하고 돌아가려고, 편한 길을 찾다보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내게 온 운명을 피하려 하면 되나. 직원들이 똘똘 뭉쳐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눈이 와야 푸르름을 안다는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어려워졌을 때 진정한 색깔이 드러나는 법이다.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만큼 경쟁력도 커지고 덕분에 그 뒤에 닥친 금융위기는 더 쉽게 더 잘 넘을 수 있었다. 그때 공장을 접은 사람도 주위에 많았다. 지금은 다들 ‘그때 좀 더 견딜걸’하면서 후회한다.”

▶지역 자동차 부품산업의 전망은 어떤가.

“지역 자동차부품 업계는 내수와 수출의 동반 감소에다 완성차 대기업들이 해외 시설투자를 늘리면서 큰 타격이 우려된다. 1960년대엔 동명목재가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었다. 70년대엔 섬유, 80년대엔 철강, 90년대 이후엔 자동차와 IT로 산업구조가 재편됐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변화에 빨리 대응하고 흐름을 타야 한다.

지역 자동차부품업계 대부분은 기업의 핵심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쉬운 것은 세상에 없다. 또 쉬운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것이 내 것이다. 자동차 산업 지형도 요동치고 있다. 부품사가 자동차산업의 동향 변화를 읽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미래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 당할 지 모른다.”

기업 경영 40년차. 그는 여전히 잠시라도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 위에 앉아 있다. 딴 생각 않고 앞만 다라보며 ‘경륜’과 ‘전문성’ 두 개의 페달을 쉬지 않고 돌리고 있다.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래 해야 한다. 여기에 덕까지 갖추면 완벽하다.” 경륜과 전문성, 거기에 덕까지 갖춘 기업인이 대구에 있다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도 큰 행운일 것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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