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중 말고 집중에 ‘집중’하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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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1   |  발행일 2017-10-21 제16면   |  수정 2017-10-21
집중과 영혼
20171021
김영민 지음/ 글항아리/ 1012쪽/ 4만8천원
20171021

저자인 철학자 김영민은 지난 25년여 동안 꾸준히 새로운 글쓰기와 철학적 개념들로 한국 인문학의 독특한 줄기를 이뤄왔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간은 그간의 공부론을 집대성하고, 공부론의 실천을 통한 인간의 가능성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집중’과 ‘영혼’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즉자적 동물성을 벗어나는 초월적 순간들을 살핀다. 공부의 목표에 ‘열중’하는 일에서 벗어나, 공부의 수행성을 다양한 각도로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영혼’이라는 삶의 가치를 모아내고 있다.


25년간 연구한 공부론의 집대성
공부론 실천으로 인간가능성 담아

행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방향’
방향에 따라 의미·가치가 달라져
모든단계에서 집중이 중심 이뤄야



우리 시대 개인들은 제대로 된 집중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 일쑤다. 대부분이 도시인인 우리는 이유 없는 피로에 젖어 삶에 대한 지속적인 에너지를 유지하지 못한다. 저자는 한국인이 매사에 들떠 명멸하는 하나의 매력에도 전체가 쉽사리 쏠려가 도무지 집중의 미학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집중 대신 열중과 몰입만이 흔하게 보인다. 집중은 변질된 형태로 성과주의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돈으로 뛰고 인기로 먹고사는 축구 선수도 열중하며, 상가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들을 솎아내는 이들도 열중한다.

하지만 열중은 집중과 다르다. 열중은 도구적이고 호흡이 짧으며 그 행위들은 언뜻 순수하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나, 사욕에 좌우되며 어느새 정신의 진보를 막는 수렁으로 작용한다는 게 이 책의 큰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집중과 열중을 구분케 하는가?

저자는 열중에 비해 집중은 ‘존재론적 겸허’를 갖춘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무늬를 형성케 한다. 마음은 뇌의 활동에 따라 떠오르는 것이며, 뇌는 몸의 활동에 의해 내면화된 것이고, 몸은 타자와의 조응적 활동에 의해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에서 집중이 행위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집중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차분하고 견결하게 이루어지는 집중과 정성이야말로 달(達)과 성(聖)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좁은데, ‘좁다’ 함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에고와 싸워 이겨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길’일 수 있는 것은 여러 틀로써 그 본을 보여준 학(學)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집중을 위해서는 그 행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방향이다. “사랑은 영혼의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시몬 베유가 말했듯, 집중은 무엇보다 그 방향에 따라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죽 쒀서 개 주어서는 안 되고, 공들여 오른 산이 엉뚱한 곳이어서는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전념해서 일군 재능과 성취가 폭력과 죽임의 매체로 전락하는 것도 비극이다. 그러므로 집중하는 사람이 집중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의 집중이 얹힌 생활양식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그 집중이 이웃과 세상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하는 문제가 다시 ‘문제’가 된다. 이런 뜻에서 집중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발굴한 것인 셈이다.

저자는 “인문학적으로 되려면 공부가 필요하며, 인간의 자아가 문제의 중심에 놓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즉 공부에 형식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자아의 형식과 창의적으로 길항하는 길일 것이며, 공부와 수행의 눈은 특정 대상을 포착한다기보다 자신의 에고를 깨고 비우고 넘어서려는 공력의 총체적 집중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몸에 근착하고 있는 버릇을 손대지 않고서는 교양도 기도도 반성도 결심도 필경 도로 아미타불인 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초월의 좁은 길에 들어선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영혼’의 자리는 어떻게 갱신될 수 있을까. 놀라운 이 생명과 정신의 도정에서 ‘공부’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은 이 광대무변한 시공간 속에서 구원의 소식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희망을 살피고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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