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횡령·배임으로 투자자는 최근 5년 3조2천억 손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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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1   |  발행일 2017-10-21 제11면   |  수정 2017-10-21
국정감사를 통해 본 ‘증시 민낯’
20171021

지난 12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5년간 100여곳의 상장사가 횡령·배임 등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는가 하면 최근 9년동안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4만6천여명이 총 5조2천억원가량의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다 개인투자자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공매도’의 상당 부분이 내부정보를 활용한 불법거래를 통해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다.

◆개인투자자 울리는 상장사의 횡령·배임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증권거래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상장사 111곳에서 횡령·배임 등이 일어났고, 그 피해액은 3조2천29억원으로 집계됐다. 코스피시장이 41개사 2조6천3억원으로 전체의 81%를 차지했고, 코스닥시장 피해액은 70개사 6천26억원으로 조사됐다.

올해 들어서만도 23건, 4천244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80억원·1심 유죄),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264억원)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렇게 횡령·배임 사건 등의 기업 범죄를 저지른 지배주주, 경영전문인 절반 이상이 유죄판결 확정 이후에도 재직했던 회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리뷰’를 보면 기업범죄를 저지른 지배주주, 전문경영인 62명 중 32명이 유죄판결을 확정 받은 이후에 다니던 회사나 다른 계열사 임원으로 복귀했다. 특히 전문경영인은 22명(57.8%)이 현직으로 복귀했다.


올해도 23건에 4천240억 규모 발생
삼성전자 이재용·최지성씨 등 포함

유죄 확정된 전문경영인 절반 이상
재직 회사나 계열사 임원으로 복귀



미국은 1978년부터 2006년까지 기업범죄를 저지른 2천206명 중 93%가 해고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최고 경영진은 재취업 기회는 물론 스톡옵션 행사 기회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의원은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임원이 경영진으로 복귀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옳지만, 이중 처벌 우려 등을 고려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범죄행위를 저지른 임원을 상장법인 임원으로 선임할 때 반드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투자자 주의 환기 및 횡령·배임 같은 임원의 범죄를 간접적으로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만큼 상장사 임원의 범죄경력 공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공시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범죄경력을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므로 법무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주식시장에서도 ‘금수저’‘흙수저’

주식시장에서도 금수저와 흙수저의 구분은 명확했다. 특히 대기업 오너 일가의 미성년 자녀는 ‘금수저 끝판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 5월1일 기준으로 총수가 있는 2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에서 9개 집단의 총수 미성년 친족 25명이 상장 계열사 11곳, 비상장 계열사 10곳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지난 9월30일 기준으로 1천32억원으로, 미성년자 1명당 약 41억2천만원어치의 주식을 가진 셈이다.

대기업 집단별로 보면 두산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 오너 일가의 미성년 자녀는 두산건설·두산중공업 등 주식 43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GS그룹 총수의 미성년 친족 5명도 915억원 상당의 GS·GS건설 주식과 비상장 계열사 5곳의 주식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LS도 미성년 3명이 40억원 상당의 주식을, 효성은 2명이 32억원 상당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미성년 자녀에 계열사 지분 넘겨줘
재벌 총수 세금회피 수단으로 악용

연기금 대여 주식으로 대량 공매도
상당수는 내부정보 활용 불법거래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성년 친족에게 계열사 지분을 증여하면 우호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고, 계열사가 성장한 뒤 증여하는 것과 비교해 상속·증여세를 줄일 수 있어 재벌 총수들이 세금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오너 일가 미성년 자녀를 포함해 미성년자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지난 연말 기준 총 평가액 1조4천328억원이다. 이에 따라 미성년자들은 143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예탁결제원, KEB하나은행 및 KB국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미성년자 보유 상장회사 주식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미취학아동인 0~7세가 1천669억원(평가액 기준), 초등학생인 8~13세가 6천550억원, 중·고교생인 14~18세가 6천109억원으로 각각 19억원, 46억원, 77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간 것으로 집계됐다.

미성년자 주식 보유 평가금액이 가장 많은 회사는 한미사이언스(약 2천644억원)였고, 그다음은 GS(약 788억원) 등이었다.

미성년자 배당액이 가장 높은 GS는 배당금으로만 24억원 넘는 수익을 거뒀다. GS는 지난해에는 미성년 자녀들이 22억여원의 배당금을 받아 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고, 한미사이언스와 삼성전자도 2년 연속 상위권을 기록했다.

민 의원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력으로 인해 등급이 결정된다는 소위 ‘수저 계급론’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대기업에 미성년 주식부자가 많다는 사실을 보면 이들이 해당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들의 주식 취득과정에서 상속과 증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불법·탈법·편법 등이 없었는지를 관계기관에서 주의 깊게 관리 감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공매도에 활용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작년 9월 한미약품의 1조원대 계약 파기 공시가 있기 바로 전 총 5만471주의 공매도가 쏟아져 나왔고, 이 중 3만1천416주가 국민연금으로부터 대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조사 결과 이 공매도 세력들은 내부자 정보를 활용했다. 특히 이날 7시46분부터 9시10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은 3만1천416주를 대여했고, 당시 주가로 환산하면 203억8천800만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국민연금이 대여한 주식의 상당 부분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시세차익에 활용된 셈이다.

결국 이날 한미약품 주가는 18% 하락해 50만8천원에 마감했고 그 이후로도 일주일 동안 지속적인 하락이 이어졌다. 결국 10월7일에는 42만3천원을 기록, 악재 공시전보다 31% 하락했다. 9월30일에 대여한 주식의 상환일이 10월4일부터 6일까지인 것으로 감안하면 주식 대여를 통한 공매도 이익은 40억~60억원에 달할 것으로 김 의원실은 추산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코스피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비중이 높은 종목 50개 중 25개는 국민연금이 5억원 이상 주식을 빌려준 종목인 것으로 집계됐다.

김 의원은 “대여된 주식은 공매도로 활용되고 있고, 상당수는 내부정보를 활용한 불법거래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공매도의 순기능을 고려하면 대규모 자금을 보유한 연기금의 주식 대여는 금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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