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언제나 핑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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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7   |  발행일 2017-10-17 제31면   |  수정 2017-10-17
[CEO 칼럼] 언제나 핑계는 있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이라고 평가받는 대동법은 종래 가구를 단위로 거두어들이던 다양한 지역 특산물 대신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쌀로 통일하여 납부하도록 한 법이다. 땅 한 평 없는 소작인이나 대지주 여부를 불문하고 개개인에게 똑같이 부과하던 세금을 부담능력에 따른 과세로 바꾼 것이다. 공평과세의 이념에도 부합하고 세무행정면에서도 편리하고 간단한 이 제도가 경기도에서 시범 실시된 후 전국으로 확대되기까지 무려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땅을 가진 권문세족과 토호들이 새로운 제도 도입에 집요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차마 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반대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반대 논리를 개발하였다. 겉으로는 백성을 위하는 척하였다. “백성들이 지역 특산물을 직접 바치는 것보다 쌀로 만들어 바치기가 더 어렵다. 흉년이 들었으니 지금 시행하기가 어렵다. 공물처럼 여러 번에 걸쳐 내는 것에 비해 추수기에 모두 합산하여 거두어들이면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진다. 서울까지 쌀을 운반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징수 과정에서 나타난 행정적인 폐단을 개선하면 되지 구태여 새로운 법과 제도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등이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에, 그 시행에 반대가 따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을 뺏어가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이해를 중심으로 행동하기 마련이요, 기득권 지키기는 사람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는 속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어떠한 반대 논리에도 상당한 정도의 합리적 이유는 항상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개혁에 대한 저항은 대체로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불합리한 자기 속셈을 숨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당장 실행이 어렵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개혁의 초기 동력이 약해지기를 기다린다. 실질을 왜곡한 자극적인 작명이나 슬로건으로 여론을 왜곡하기도 하고 사안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인신공격으로 개혁 추진 세력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 개혁의 뒷다리를 잡는 것은 비단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부동산에 대한 과세 강화나 법인에 대한 세금 경감 조치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세금 폭탄’이니 ‘부자감세’니 하는 용어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작명을 통한 진실왜곡의 사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있는 대기업 귀족 노조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러한 필요성은 외면한 채 고용 안정성의 강화가 중요하다고만 외치고 있다. 반대로 기업들은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 비정규직 고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속내는 사내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을 통해 저임금 근로자를 사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모두가 교묘하게 속셈을 뒤로 감춘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더 큰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사회나 공동체는 희망이 없다. 이해 당사자는 그렇다 하자.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까지 그래서는 안된다. 단임정권이라는 한계 속에서 일처리를 미루면서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관료들이나 당장의 표 계산에 나라의 장래를 뒤로 밀쳐둔 정치인들이 비난받는 이유이다. 집요한 반대 목소리와 개인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삶을 생각한 선각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대동법은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요, 민초들의 삶의 형편도 개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이해에만 매달리는 보통 사람들을 설득하여 반걸음씩의 양보라도 받아내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다.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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