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드로스테의 작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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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07:59  |  수정 2017-10-16 07:59  |  발행일 2017-10-16 제22면
[문화산책] 드로스테의 작은 성
이도현<화가>

유로화로 통합되기전 독일의 20마르크 화폐 속에는 아네테 폰 드로스테 휠스호프의 초상과 그녀의 소설 ‘유대인의 너도밤나무’에 등장하는 너도밤나무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대표시인이자 작곡가 그리고 소설가다. 화폐속에 등장하는 인물인 만큼 독일 문학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드로스테는 1797년 독일 베스트팔렌 주 뮌스터의 전통있는 귀족가문 봐서부르크 휠스호프(Wasswerburg Hulshoff)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자란 ‘휠스호프 성’은 뮌스터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병약한 신체와 극도의 예민함으로 평생 거친 세파로부터 멀리 떨어져 은둔자 생활을 해야했던 그녀를 자연의 생명력에 힘입어 불안한 영혼을 달래며 위대한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시간과 분투 중인 나에게도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과 마주하게끔 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라 하기에는 너무 고요하고 상업화되어 있지 않아 운영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그래서 알아보니 휠스호프가의 재단과 후원 그리고 박물관 입장료를 통해 어렵게 꾸려 나간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문화융성이라는 정책을 앞세워 몇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모든 장소를 떠들썩한 관광지로 획일화시키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되돌아 보게 한다.

이곳과 마찬가지로 대구의 ‘김광석 거리’도 그의 노래를 통해서 시대를 추억하고 그때의 삶을 재생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찾는 기억의 장소일텐데 점점 상업이 점령하고 이권이 개입되면서 그 시대를 기억하는 장소성이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어쩌면 내가 휠스호프의 성에서 현재의 문명과 떨어져 시인이 살았던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손익계산만 따지는 논쟁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또 다른 추억의 층위를 쌓을 수 있고 그렇게 되살아난 시간들은 또 다른 한편의 시간으로 새겨지기를 반복하며 영속의 시간을 이어간다. 이곳 사람들은 이 공간이 미래의 시간을 잇는 가교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드로스테의 작은 성은 긴 시간을 품은 채 이 시대에 고요히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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