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차로 바꾸기 혹은 다른 길 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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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07:24  |  수정 2017-10-16 07:24  |  발행일 2017-10-16 제6면
[기고] 차로 바꾸기 혹은 다른 길 택하기

지난 주 금요일 저녁엔 우리교육청 일반고, 자공고 선생님 100여명이 참석한 연수가 있었다. 앞으로 도입할 예정인 고교 학점제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서울 도봉고의 황재인 교장 선생님이 함께한 자리였다. 교장, 교감, 부장 교사, 교육 전문직 등 다양한 이들이 연수에 참여했다.

2시간 강의 후 저녁 식사, 테이블 토론과 토론 내용 발표가 이어졌다. 계급장 떼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 고등학교의 변화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4시간이 훌쩍 갔다.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서 중학교 교사들의 삶이 한동안 힘겨웠다. 그러나 중학교에 변화가 생겼다. 고교 학점제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도 변화가 크다면 크다. 최근 고등학교 입학전형 설명회가 지역마다 여러 차례 열려 중3 학부모를 대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의 변화를 설명하면 학부모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대학을 가기 위해 3년간 죽어라 공부하던 그 고등학교, 이젠 변해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정규 수업만 놓고 생각해 보면, 아침 8시 30분에 1교시가 시작되어 오후 4시 30분경이면 7교시가 끝난다. 하루 7시간.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 고등학생들은 ‘학습’을 한다.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배우고 익힘에 즐거움이 빠진다면, 만약 공부가 고역이 된다면, 더구나 그 시간이 3년이나 지속된다면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공자님 말씀처럼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거워야 하는데, 즐겁지 않다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그 ‘방향 전환’을 위해 학교도 노력 중이다. 심각하게, 진지하게 노력 중이다. 대학 입학 성적표도 ‘우수’ 도장을 받고, 학생들의 삶의 질도 ‘매우 만족’을 받으려고 학교는 분주하다.

고등학교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나의 삶, 우리 지역의 삶과 나의 배움이 괴리되지 않아서 배움이 즐겁고, 의미가 있고, 배움의 결과를 평가받는 것이 배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것. 많은 분이 동의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고등학교의 수업과 평가가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출발선에서 멀리 가진 못했다.

몇 주 전 덴마크와 핀란드의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왔다. 공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덴마크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4명의 학생을 만났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설명했다. 교육 내용과 관련해 자신들의 삶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동료들과 협력해 제안하고, 제안을 현실화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 보완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개념과 원리들을 익히게 된다고 했다. 학교생활은 즐겁고, 배움은 의미 있게 자신의 일부가 되어 간다고도 했다.

부러움을 가득 안고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 쪽엔 우리 교육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우리 교육도 아직 차로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지만 깜박이를 켜고 이미 다른 차로로 진입 중이야’라고 마음으로 속으로 한번 외쳐봤다.

다만 우리에겐 남은 일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학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 ‘공부’의 내용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다. 25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면서 각성하게 된 것은 바로 강점 교육의 힘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잘 하는 게 하나씩은 있다. 우리 학생들의 강점, 장점,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 키워주고 북돋우면, 거기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더 나은 능력이 생기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된다.

학생들을 보는 방식이 바뀌면서 한 줄 세우는 교육에서 여러 줄 세우는 교육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이지만 줄세우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 저마다의 화려한 색깔로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고 있는 한 아이, 한 아이를 위해 충분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기다려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꽃봉오리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다. 꽃의 품종이 다를 수도 있다. 늦게 피기도 하고 일찍 피기도 한다. 다른 것이 자연의 이치다. 줄 세우지 않고 저마다의 성장을 위하는 교육,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아니한가. 최진아 (대구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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