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선교용 찬송가로 접하게 된 서양의 12음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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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9면   |  수정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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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언더우드가 1894년 한국 최초로 편찬한 오선 악보집.

지난 회에서는 조선 최초의 피아노가 들어온 시기와 운반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어 입성하게 된 고작 한 대의 피아노. 그로 인해 이듬해 또 다른 선교사의 피아노가 같은 경로를 통해 또 들어오게 된다.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힐러리경이 인류 최초로 도달한 이후 수많은 산악인들이 그의 루트를 따라 등정한 것처럼 대구 최초의 피아노루트를 따라 많은 피아노가 들어온 것이다.

파커 부인의 피아노 역시 사문진 나루터에서 옮겨졌다. 한 해 전 어렵사리 옮겨진 피아노 사연들을 알고 있던 터라 첫날부터 인부 30명을 데리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1900년에 들어온 이 피아노를 통해 서양음악을 배운 졸업생이 생겨난다. 1901년 파커 부인의 피아노는 1907년에 개교한 신명여학교에 기증된다. 불과 7년 만에 12명의 학생이 서양음악을 배웠고 그 중 3명이 졸업을 했다. 대구 서양음악의 여명기였다.

피아노가 들어오기 전에는 운반하기가 용이한 ‘손풍금’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손풍금은 현재의 아코디언과 유사한 악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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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들어온 서양악기 대부분은 선교용으로 유입된 것이다. 조선후기 서양의 선교활동은 종교 전파의 목적과 함께 그들의 인문과학과 의술 등이 유입되어 조선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20세기 초 활동한 음악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만들어낸 곡의 기초는 찬송가, 즉 ‘가스펠’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찬송가를 전파할 때는 악보도 없고 그냥 가사만 있었다. 사실 악보가 있어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선교사들의 한국어 능력도 떨어져 찬송가 가사를 번역하는 일 또한 만만찮았을 것이다. 악보없이 찬송가를 부르다 보니 음정의 높낮이가 유지되지 않아 거의 같은 음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음치’가 많았다는 뜻인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양음계 이전에는 구전으로 전해온 5음계만 사용한 민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12음계가 장착된 복잡한 음들이 조선인에겐 한없이 낯설었을 수밖에 없었다.

찬송가집에 수록된 가사 또한 각 종파마다 번역이 달랐다. 하느님도 하눌님, 야훼, 예수씨 등으로 달리 해석되기도 했다. 나름 정감이 가고 귀여운 번역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저를 사랑하는 예수씨~’를 부른다고 상상해 보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음정이야 어떻게 되든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가 들어온 후 학교에서 서양음악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 5음계가 아닌 12음계를 정확하게 연주하고 소리내는 법을 교육받고 또 그들이 졸업하여 연주와 교육 활동을 함으로써 낯설기만 했던 서양음악은 점차 대중과 친숙하게 된다.

찬송가를 흥얼거리다 보면 베토벤 같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지은 곡들이 많지만 ‘블루스’의 기원이 되는 흑인영가풍의 노래가 더 친숙할 때가 많다. 나는 그 노래에서 왠지 낯설지 않는 정서적 공감을 느끼곤 한다. 어떤 정서가 나를 편안하고 익숙하게 만들었을까. 대부분 흑인들이 구전으로 불러온 노래들이 찬송가에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가의 주인공이었던 흑인들. 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석기시대를 보내다가 철기문명을 가진 이들에게 잡혀 이역만리 땅으로 강제이주된 노예였다. 지금도 서아프리카에는 석기시대 원주민들이 있다. 그들이 부르는 포크송은 몇 가지 측면에서 한민족의 민요정서와 비슷했다.

우선‘쾌지나 칭칭나네’ 등과 같은 선창의 부름과 후렴구 응답(Call & Response)의 구조, 둘째는 5음계인 흑인영가가 우리 민요의 5음계, 셋째는 그들의 노래에 묻어있는 일상의 고단함 등이 우리 민요와 모두 흡사하다.

5음계를 사용하던 흑인들이 노예 신분으로 접했을 서구의 12음계가 얼마나 낯설었을까! 찬송가를 처음 겪었던 한말의 우리 선조들처럼. 이처럼 기독교음악은 아프리카의 흑인뿐만 아니라 한말 우리 민요와 ‘이종교배’되어 제3의 음악문화를 형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서양의 ‘R&B와 Soul’처럼.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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