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추석 진주∼대구 귀성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37면   |  수정 2017-10-13
30년 前 출향길을 자전거로…그리움 묻혀 되짚다
20171013
진주성대첩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과 의기 논개의 충절을 간직한 진주성이 보이는 진주남강.
20171013
진양호 조정경기훈련장 입구의 가수 남인수 동상과 노래비.
20171013
목조 한옥성당과 고딕양식 성당이 공존하는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 문산성당. 입구에서 보면 두 성당이 조화를 이룬다.
20171013
진주에서 합천까지 고속 레이싱을 할 수 있는 33번국도 합천대로 구간.

긴 연휴인 추석을 맞아 출향 30년 만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귀성 프로젝트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평소와 달리 오후 6시에 막차를 운행한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허겁지겁 여장을 챙겨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로 갔다. 대구서 진주로 가는 귀성길은 평년처럼 한적했다. 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생각을 했다. 대구 날씨를 보고 가방에 넣고 다니는 우산을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놓고 왔는데, 창녕을 지나니 굵은 비가 내렸다. 함안, 지수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걱정을 하지 않게 만들더니, 진주 톨게이트에 들어서니 본격적으로 퍼부어댔다. 비는 멈출 줄 모르고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동생 차를 불렀다. 자전거를 타고 귀향하려던 계획은 비 때문에 결국 불발됐다.

퍼붓는 비 탓에 무산된 진주 귀향 라이딩
아쉬움에 차례 지내고 대구 귀성 라이딩
고향서 10㎞쯤 떨어진 한옥의 문산성당
자전거도로가 된 옛 기찻길 달려 도착
고딕양식도 공존하는 매력 즐기며 독서

남강자전거길 두 바퀴 돌면서 풍광 만끽
남인수 동상 보곤 ‘식민·분단 비운’애잔
오후 2시쯤 진양호 나서 서두른 대구行
합천 가는 33번국도로 3시간 갓길 레이싱
이어 어둠 속 2시간여…8시 막차로 귀가


임진왜란 때 대구에서 의병으로 진주까지 왔다 산 푸르고 물 맑은 땅을 찾아 눌러앉은 달성서문 감찰공파 집성촌인 우리 집안. 꿈과 희망을 찾아 도회지로 나왔지만, 누구라도 그러하듯 세상에 내 고향만큼 아름다운 공화국을 만나보진 못했다. 그렇게 유명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해 존재감이 있겠느냐 싶지만, 6·25 때 인민군에 부역한 일족의 허물을 밀고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끝까지 덮어주고 보살펴준 이 마을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전설은 내 마음의 자부와 영웅담으로 간직되어 있다. 옆 동네는 학살로 인한 큰 고통이 있었지만, 전란을 겪으면서도 일족간 불화와 다툼으로 인한 피해 사례나 한 사람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 마을의 미담은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더욱 빛났다.

차례를 지내고는 진주를 거쳐 대구로 향하는 출향라이딩에 도전했다. 다시 만끽하지 못할 민족사 이래 최장기의 추석연휴, 챙겨볼 민족지성으로 여천(黎泉) 이원조 선생(1909~55)을 가슴 속에 품었다. 추석 얼마 전 우연찮게 “셋째 원일과 넷째 원조는 월북했고, 다섯째 원창은 셋째 형을 만나러 북으로 갔다가 소식이 끊어졌다”는 이육사 시인의 집안 이야기를 읽었다. 이원조하면 5·6공 시절 금융계 황제로 알겠지만, 1928년과 1929년 연속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될 정도로 문재(文才)가 출중했던 문학평론가이다. 또 육사 이원록 시인의 동생이다. 위당 정인보 선생이 ‘장안(長安) 3재(才)의 1인’으로 꼽았을 정도로 똑똑했다는 이분의 인생 연보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니 군산대학을 졸업한 소장 국문학자가 펴낸 ‘이원조 비평선집’이 있었다.

출향라이딩의 첫 번째 인물 알현은 고향 밖 10㎞ 거리에 있는 천주교 한옥성당으로 이름난 문산성당에서 하기로 했다. 문산성당의 멋은 현존하는 천주교 성당 가운데 가장 순도 높은 목조건축양식의 한옥성당(1923년 전통 한옥양식으로 건립)이라는 역사적 가치 외에, 한옥과 고딕양식 성당이 따로 또 같이 공존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노안이 찾아온 사람들이 돋보기안경의 도움 없이도 독서를 할 수 있는 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잠깐 독서하고 가기에 최적의 공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어둠이 오기 전 빛이 머무는 시간에 열려 있어 좋다. 강당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성당에서 대구교구가 관할하던 흔적들을 볼 수 있었고,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가 성당 건립을 축성했다는 기록도 각별하게 다가왔다. (더 큰 대구를 보려면 문산성당으로 가보시라.)

추석날 오후 아무도 없는 오래된 성당 창가에서 특별하게 준비해간 ‘이원조 비평선집’을 잠시 꺼내 훑어보았다. 그가 남겨놓은 글들은 이념의 족쇄라는 잠금장치를 해체하고 무덤 밖으로 걸어나와 고향땅에서 화려한 부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퇴계 할아버지와 친형의 후광을 업지 않더라도 말이다. 1955년 남로당 숙청 때 징역 12년 형을 받고 옥중 사망했다는 기록은 대구경북이 그를 기념해도 될 실마리로 보였다. 민족의 명절날 만난 그는 민족적 비애로 다가왔다. 그의 모교인 대륜학교에서 2003년 10월 교정에 육사여천형제문학비를 세운 것이 새삼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다.

경전선 철로의 옛 남문산역에서 반성역까지 13.2㎞ 구간에 자전거도로가 개설되어 지난 8월 임시개통했다. 기차가 다니던 길을 달리니 성당으로 가는 걸음은 더뎌졌다.

문산네거리에서 문산IC가 있는 방향으로 20~30분 달려 진주혁신도시 토지주택공사본사 ~ 진주종합경기장을 지나 남강교차로 아래로 난 남강자전거도로를 달려보니 ‘전국 최고의 친환경 명품 자전거도시 진주’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수긍이 갔다. 진양교에는 자전거전용다리가 있고, 강둑에 설치한 야광 자전거조형물은 ‘남강과 함께 하는 자전거도시 진주’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진주남강 자전거길을 두 바퀴 돌자 내비게이터를 켜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그리 싫지 않았다. 느림의 진주는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최적화된 사이즈의 도시였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음식점 정보 없이 들어간 진주성 주변 식당들도 만족스러웠다.

진주성에서 남강자전거길로 평거동 수정초등학교 근처 평거교를 지나면 7㎞ 거리 판문동 진양호삼거리에 도착한다. 남강댐의 또 다른 이름인 진양호의 노을은 진주 8경 중 하나로 경관미를 자랑한다. 진양호 조정경기장 입구엔 친일 시비를 받는 가수 남인수 동상과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가 서 있다. 원래 이름이 최창수(崔昌洙)였던 가황 남인수는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진주강씨 문중에 들어가면서 본명이 강문수로 바뀌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파로 확정돼 그의 이름을 딴 가요제조차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가거라 38선’의 남인수는 식민지 조선과 분단조국이 낳은 비운의 인물이다. 2016년 집단 탈북한 12명의 북한식당 종업원 명단에 올라 있는 리은경씨는 북한국민 가수로 불리는 최삼숙씨의 딸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그가 딸이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리은경씨 접견과 석방에 관한 모든 일을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최삼숙씨는 월북한 그의 이복 동생 최창도씨의 딸이니 조카인 셈이다. 그의 동생이 월북하는 과정에 남인수의 도움이 컸다는 증언도 있고 그가 4·19의 노래를 부른 가수이기도 해 한 인물의 행적을 무 자르듯이 자른다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천예술제를 뿌리로 유등축제, 드라마페스티벌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들을 만든 문화도시 진주가 친일행적을 가졌지만 예술적 업적이 큰 남인수 기념사업에 나서면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진주시민운동’이 반대를 하고 나설까. 남인수 기념사업 시즌2가 열리기를 바라는 발원을 담아, 남인수 동상 옆에 앉아 이미자가 불러주는 ‘진주라 천리길’ ‘낙화유수’, 남북한합창 ‘아리랑’을 들었다. 민족적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진양호가 남인수의 인생애수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

오후 1시50분 진양호를 나서 대구행을 서둘렀다. 합천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르다. 남강자전거길을 통해 진주성로로 향했다. 도로표지판은 진주보건대학이 있는 오죽광장 방면으로 가면 합천으로 가는 길이라 가리키고 있었다. 진주여고 네거리, 봉원중학교를 지나 못재를 넘어 집현면에 도착하여 사촌교차로에서 33번국도를 만났다. 진주에서 합천을 지나 고령 지릿재까지 가는 33번 국도를 따라 갓길 레이싱을 시작했다. 대암 내동교차로~철수교차로~내리곡교차로~안간교차로~정촌터널~멱곡교차로~방화교차로 고속도로 같은 33번국도를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으로 달렸다. 의령으로 가는 방골마을 입구를 오후 5시30분경 주파했다.

의령대의 휴게소에서 저녁으로 짬뽕을 먹고 어둠 속 필사의 스퍼트를 시작, 대야성 관문을 마주하니 7시43분이었다. 총 주행 2시간30분 만에 합천시외버스정류장까지 주파하는데 성공했다.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8시 합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막차를 타고 서부정류장으로 귀가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