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의 읽기 세상] 소설을 보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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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22면   |  수정 2017-10-13
춘향전 진짜이름 마누라전
흥부전은 당연히 형제전…
눈물나게 쓴 가족이야기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선규의 읽기 세상] 소설을 보는 관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정되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세 되던 해 이직(移職)하는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답니다. 영국인이지만 일본계여서 통상 세 번째 일본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되는 셈입니다. 옆나라에서는 세 사람이나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우리는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소설가의 한 사람인 저에게 자괴감마저 들게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문제는 번역입니다. 이번 경우는 본인이 영국인이기 때문에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만 우리 소설도 영어로 번역만 잘 된다면 틀림없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를 배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처럼 구석구석 고초를 겪은 민족도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외침(外侵)과 뼈저린 식민지 경험, 목숨을 건 독립운동과 참담한 이념의 분열, 반인간적인 동족상잔과 학살 사태들,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분단상황과 국제적인 핵 갈등 등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해 숱한 실존적 질문을 쏟아낼 수 있는 가혹한 역사적 환경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역설적입니다만, 그만큼 비옥한 문학창작의 토양이 주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심정에서 소설을 보는 다소 비뚤어진 관점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입니다.

젊어선 왜 고전 작품들의 결론이 그 모양일까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틀에 박힌, 그 흔한 윤리적 결단밖에 다른 결말은 없는 것일까. 흥미진진한 연애담, 모험담, 복수담, 횡재담의 끝은 예외 없이 윤리적 결단으로 장식됩니다. 이를테면 ‘목숨 걸고 부부간 의리를 지키는 아내’(춘향전), ‘성스러운 모성애를 구현하는 엄마’(선녀와 나무꾼), ‘죽기로 효도하는 딸’(심청전), ‘무조건 형을 용서하는 동생’(흥부전) 등이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봉건시대의 소산이니 그렇겠지’ 여겼습니다. 유식한 말로 심미적 코드(예술)에 기생하려는 사회적 코드(윤리)의 폭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결국은 다 가족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마누라, 형제, 아들딸 이야기를 좀 근사하게 하려다보니 그렇게 곁가지가 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못나도 내 마누라 내 서방이고, 세상에 내 부모만 한 사람도 없다는 것, 그리고 형제간에 잘 지내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강조합니다. 그래야 소설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과장법을 조금 썼습니다.

‘춘향전’의 진짜 이름은 ‘마누라전’입니다. 기생 딸이면 당연히 기생 신분인데 춘향이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양반집 자제(子弟)와 정혼합니다. 그걸 용납합니다. 마누라가 세상 제일 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홍길동전’은 ‘아들전’, ‘심청전’은 ‘딸전’입니다. 둘 다 못난 아비 때문에 생고생하는 자식들 이야기입니다. 아비들은 개꿈(little dream)을 꾸는데, 자식들이 그걸 용꿈(big dream)으로 바꿉니다. ‘심청전’을 두고 대제사장 큰무당을 들먹이고 바리데기 설화를 갖다 대는 것은 그래서 모두 헛말들입니다. ‘흥부전’은 당연히 ‘형제전’입니다. 흥부 놀부를 하나는 윤리, 하나는 경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캐릭터화했다는 말이나, 장자 상속이 본격화되던 사회경제사적 시대상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말들도 모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들입니다. 집에 가서 아이들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지나 않는지 잘 살필 일입니다. 해외의 명작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데미안’ ‘모비딕’ ‘주홍글씨’ 같은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다 가족(유사 가족 포함)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물 나게 쓴 가족 이야기에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면서 쓴 소설이 남도 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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