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0-13 07:39  |  수정 2017-10-13 07:39  |  발행일 2017-10-13 제16면
[문화산책]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할 일 강박증’에 시달릴 때가 있다. 이 ‘할 일 강박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흘려보내는 시간을 죽도록 못 견뎌 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한번 이 고질병에 걸린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에 심한 불안감을 느끼며 급기야 몸이 무척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관광지 구경하기, 맛집 찾아다니기 등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에 이른다.

나 역시 인도여행을 할 당시 ‘할 일 강박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엔 직장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바쁘게 사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다 갑자기 여행을 시작했더니 그 남아도는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정신적 휴식을 위해 여행을 시작했건만, 막상 또 자유시간이 무한정으로 주어지니 가슴 한구석이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이렇게 쉬기만 해도 되는 걸까?’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하루를 고단하게 보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산책하고,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른다는 곳도 찾아가고, 동네에서 인기 있다는 관광지를 방문해 인생 샷도 좀 찍다가, 그렇게 노을이 떨어질 때면 터덜터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 그렇게 한 보름가량을 살았던가. 나는 무려 2주라는 시간을 ‘남들이 하는 것’만을 좇으며 멍청하게 살아본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온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인도여행을 통해 내가 얻고 싶었던 본질이 뭔지. 사실 나는, 그저 ‘쉬고 싶어’ 여행을 떠나온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평소에 워낙 촘촘하게 살았던 터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꼭 뭔가를 해야만 알찬 여행이고 잘 하는 여행은 아닌 건데. 그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새들의 울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여행은 충분히 값지고 소중했을 텐데. 알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들이, 오히려 억지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보다 내 여행을 더욱더 평안하고 포근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는 거였는데 말이다.

여행에 있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란 없다. 몸이 바쁘지 않더라도,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쉬기만 한다고 해도, 우리는 충분히 그 시간을 ‘쉼’이라는 그 자체로 알차게 채워나가고 있다. 그러니 너무 ‘할 일’에 집착하지 말자. 눈앞에 놓인 광활한 풍경과, 넘쳐나는 시간과, 내 하루를 내 멋대로 채워나가는 그 가슴 벅찬 자유를 그저 즐기자.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가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서현지 <여행칼럼니스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