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생각하면 이게 맞지요” “2시간 남짓 방문시간 너무 촉박”…지역 대형병원 병문안 출입통제 현장 목소리

  • 최보규,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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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0 07:26  |  수정 2017-10-10 08:33  |  발행일 2017-10-10 제6면
방문객 대부분 취지에는 공감
짧은 면회시간에 불편함 호소
병원측 “초기 혼선 있었지만
자체 점검결과 개선되고 있어”
간호사들 “병동 환경 안정돼”
20171010
지난달 25일 오후 5시50분쯤 대구 영남대병원 본관 1층 로비.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출입통제시스템에 가로막혀 병실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날 1층 통제는 오후 6시가 되자 풀렸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평일 오후 6~8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12시·오후 6~8시.’ 면회객의 면회시간을 위와 같이 제한하는 병문안 문화개선 체계가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구에는 5개의 대형병원이 지난 7월 말부터 이달 초 사이 출입통제시스템을 각각 설치·가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1~2달 정도 된 ‘신생 병문안 문화’에 대해 현장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영남일보는 대형병원의 병문안 출입통제시스템을 둘러싼 현장의 소리를 담았다.

◆“인자 문 활짝 열어놨네”

“환자의 쾌유를 빌며 병실을 찾던 우리의 병문안 문화,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메르스 이후 환자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 새로운 병실문화가 필요합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5시58분 대구시 중구 경북대병원 5병동 입구.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안내방송이 한 차례 흘러나왔다.

방송이 끝난 후 오후 6시 정각이 되자 이전까지 열리지 않던 자동문이 열리더니 열린 상태 그대로 있었다.

“인자 문 활짝 열어놨네.”

오후 6시3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동문을 통해 병실 안으로 들어가던 정춘식씨(56)가 무의식적으로 말을 뱉었다. 두 자녀와 함께 병문안을 왔다는 정씨는 수 분 전 자동문 앞까지 왔다가 문이 안 열려 1층에 내려가 기다렸다고 했다. 이후 출입 허용 시간에 맞춰 다시 병실로 올라온 것. 그는 “불편하기는 해도 환자를 생각하면 이게 맞지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5시40분쯤 영남대병원 본관.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는 두 명의 보안인력이 병문안객을 통제하고 있었다. 출입통제 안내판이 세워진 곳 인근에 있던 의자 8개는 짐과 선물 보따리를 든 병문안객 열댓명으로 가득했다. 대기하던 병문안객들은 출입통제시스템에 대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

서서 기다리던 신경화씨(46)는 “대중에게 홍보가 잘 안 돼 있어서 보호자가 미리 말 안 해 줬으면 모를 뻔했다. 불편하지만 다수를 생각하면 필요한 시스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곽경순씨(60)는 “영 파이다(별로다). 나는 대구에서 오니까 시간 안 맞으면 다시 올 수 있지만 시골에서 오는 사람들은 무슨 고생이고. 환자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있고 단순 회복을 위해 입원한 사람들도 있는데 정도에 따라 제도를 달리해야 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입원 중이던 환자 이달수씨(42)는 “병문안 오는 지인 중 다수가 직장인인데 마치는 시간이 오후 7~8시쯤이다. 방문 시간이 끝나기 전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겨우 2시간만 허용하다보니 환자와 병문안객 모두가 촉박하게 느낀다”고 했다.

고향 문안객이 많다는 박모씨(47·김천)는 “집안 어른들한테 병문안 허용 시간을 일일이 알려주느라 힘들었다.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은 교통편이 비교적 열악한데, 평일은 저녁만 허용되니까 고향까지 돌아가시는 게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환자들의 입원 환경이 더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가 불러온 신생 문화

출입통제시스템은 2015년 발생한 메르스 사태가 계기가 됐다. 당시 메르스 확산의 대표적 원인 중 하나로 무분별한 병문안 문화가 거론됐다. 이후 정부는 상급종합의료기관에 대해 병문안의 일일 허용시간을 설정하고, 병문안객 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다수 병원은 비용 부담, 업무부담 증대 등 각종 이유로 병문안객 출입통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다 수개월 전 보건복지부가 병문안 문화 개선 강경책을 내놓으면서 지역을 비롯한 전국 대형병원들은 서둘러 출입통제시스템을 설치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상급종합병원의 지정 및 평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면서 상급종합병원 평가시 병문안객 통제시설 및 보안인력 구비 항목에 3점 가점을 뒀다. 1~2점 차로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하기도 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당락을 가를 정도로 영향력이 큰 점수다.

이에 대구에서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희망하는 경북대병원, 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등 5개 병원이 출입통제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면회시간은 보건복지부의 권고안대로 평일 오후 6~8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0~12시·오후 6~8시로 정했다.

대다수 병원들은 “초기 혼란스럽던 모습에 비해 정착해 나가는 것 같다”고 느낀 바를 전했다. 지역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시행 첫 주에는 면회 온 분들 중 시간이 제한돼 있는 걸 몰라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 병원 자체적으로 점검해 본 결과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체감되는 병동 분위기 변화

새로운 병문안 문화는 단순히 면회시간 제약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병동의 풍경과 분위기부터 시작해 진료 환경,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 요소 등이 종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불편을 호소해도 출입통제시스템의 취지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내지 않은 이유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병동 환경의 안정성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병문안에 제약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문안객이 사라져 병동 분위기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안정적이고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근무 간호사는 “과거 밤늦게 병문안을 와 환자의 안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또 병문안객이 끊임없이 찾아와 진료나 치료에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그런 게 사라졌다. 출입할 때 카드를 매번 찍어야 되는 게 불편하지만 변화를 생각하면 감내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만난 보호자 정모씨(47)는 “지난해 말 지인이 입원해 병문안을 갔었는데 병실에 문안객이 너무 많아서 나조차도 정신이 없었다. 지금껏 한국사회가 병문안에 대해 집착해 온 경향도 있었다. 사람들의 병문안 의식이 바뀌면 제도 역시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것”이라고 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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