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악화와 양화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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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9   |  발행일 2017-10-09 제31면   |  수정 2017-10-09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16세기 영국 토머스 그레셤이 주창한 이 학설은 어느 사회에서 악화와 양화가 동일 가치를 가지고 유통될 경우 나쁜 화폐만 유통되고 좋은 화폐는 사라진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불순물이 섞인 금화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순물 섞인 금화를 몰래 제조하게 되고 순수한 금화는 집에 꼭꼭 감춰두게 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에선 순수한 금화는 자취를 감추고 조악한 품질의 금화가 판을 치게 돼 질서가 무너진다.

최근 문경지역의 신축 아파트 시세가 터무니없이 오르자 주민 상당수가 인근 신도청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있다고 한다. 신도청지역이 멀지도 않거니와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중형차 한 대 값 차이가 난다는 소문이 나돌며 50여 가구가 이주를 했거나 검토 중이라는 것이 현지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여기에 문경지역의 신축 아파트 시세가 높아진 데는 일부 부동산 투기세력이 개입해 가격을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보태지면서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높은 아파트 가격이라는 악화가 서민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또 문경지역의 교육열이나 교육환경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대학들이 농어촌 특례 혜택을 줄이면서 문경지역 고교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수시전형 비중을 늘리면서 점촌고처럼 전체적인 학력수준이 높은 곳은 내신성적 올리기가 어려워 기피하는 현상까지 보인다. 학부모들 사이에는 농어촌 특례가 가능한 인근 읍·면지역 중·고등학교로 자녀를 전학시키려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수도권에서 문경지역 고교에 다니기 위해 이 지역 중학교로 전학 오는 사례가 심심치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높아져만 가는 신축 아파트 시세나 불리해진 교육 여건 등을 문경시가 계속 방관한다면 인구유출은 막을 수 없다. 특히 신도청과의 교통망이 더 발달하고 철도망의 확충이 이뤄지면 도시 기능이 인근 대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빨대효과’까지 더해져 문경의 인구는 더욱 늘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문경은 지금 악화를 줄이고 양화를 만드는 일에 주민 모두가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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