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정치칼럼] “추석민심은 잡는 게 아니라 읽는 것”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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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9   |  발행일 2017-10-09 제30면   |  수정 2017-10-09
‘최순실 게이트’ 발생 1년
전-현 정권의 불꽃 여론전
새환경에서 맞은 올추석에
민심잡겠다며 경쟁한 여야
국민들의 생각부터 읽어야
20171009

작년 추석 연휴(9월14~18일) 밥상머리 화두는 먹고사는 문제 외에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사드의 성주 배치 추진, 경주 지진, 갓 출범한 20대 국회 등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30%대 중반으로, 국정운영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은 연휴 끝나고 이틀 후에 느꼈다. 한겨레신문이 9월20일자에 ‘최순실씨, K스포츠재단 설립·운영 개입’이란 기사를 실었다. 앞서 7월26일에 TV조선이 ‘청와대 안종범, 문화재단 미르에 500억원 모금 지원’이란 보도를 했지만 ‘최순실’이란 이름이 등장한 건 이때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청와대는 “추측성 기사에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며 애써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미르·K스포츠재단의 청와대 비선실세 개입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냈고, 검찰은 10월5일 사건을 형사8부에 배당했다. 이후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박근혜정부는 무너졌다.

1년이 흐른 올해 추석 화두도 먹고사는 문제와 북핵 위기는 같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 게 문재인정부가 임기 초반에 어떤 일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였다. 특히 추석을 맞아 여야 정치권이 만들어 던져놓은 프레임이 추석 차례상 화제에 올랐다. 새 정부가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의 일을 파헤치는 작업을 여권은 ‘적폐청산’, 보수야권은 ‘정치보복’이라고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휴에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든다)’와 ‘징비’(懲毖·지난 잘못과 비리를 경계해 삼간다)를 말했다. 서애(西厓) 류성룡 종택(宗宅)에서 서애가 남긴 글귀를 인용했다고 하지만 적폐청산의 또 다른 표현들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산실인 TK지역을 취임 후 처음 방문한 자리서 “서애 류성룡의 징비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새기고 만들어야 할 정신”이라고 했다.

위기감에 휩싸였지만 뾰족한 반격수단이 없는 전(前)정권과 전전(前前)정권 사람들은 여론전으로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란 미명하에 일어난 사태를 보고 있다.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치고 성공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측근들은 “적폐청산위원회가 혁명군위원회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등의 표현으로 정치보복 프레임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숨 죽이고 있던 자유한국당 친박계도 여론전에 뛰어들었다. 대구·경북 출신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의원 16명은 오는 16일로 1차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일(10일) 취임 100일을 맞는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두 차례의 청와대 여야대표 회동에 불참하면서 “청산대상 적폐세력이라면서 왜 오라고 하느냐”고 일갈했다.

그런 논란들은 가장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점을 찍었다. 또 여야는 서로의 주장을 소속 정치인들의 귀향 홍보물에 담았다. 연휴에도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박 전 대통령 수감생활 같은 곁가지를 두고 폭로전을 벌였다. 그들은 이를 ‘추석 민심잡기’라고 부른다. 정말 자신들의 입장을 막무가내로 이야기하고, 유인물을 뿌리고, 상대방의 자극적인 의혹을 들춰내면 민심을 자기편으로 만들 걸로 믿는 걸까. 민심은 잡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다. 섣부르게 잡으려고 하면 더 악화된다. 정확히 읽어야 민심을 잡는다. 더구나 이번엔 1년 만에 완전히 변한 환경에서 국민이 뭘 생각하고 원하는지를 알아야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나라의 명운을 새로 책임진 새 정부엔 더욱 그렇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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