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선생님, 사는 게 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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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9 07:40  |  수정 2017-10-09 07:40  |  발행일 2017-10-09 제15면
[행복한 교육] 선생님, 사는 게 다 그렇죠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작년 초, 학교급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개교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별도의 설문을 하고, 구체적인 요구도 알아보기 위해 1학년 남자 반에 들어갔다. 아쉬운 점을 발표해 보라고 했더니 “오삼불고기는 요리하기 쉬운지 너무 자주 나온다” “비빔밥 양념은 볶음고추장을 사용해야 하는데 왜 신맛이 나는 초고추장을 내는지 모르겠다” “짜장밥이나 카레밥처럼 국이 없는 일체형 식사일 때 곁들이는 반찬이 너무 한정적이다”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음료는 포장 값이 들어가고 과일 맛을 내는 첨가물이 들어가는 만큼 과일은 통째로 먹게 해 주면 좋겠다” “멸치아몬드볶음은 멸치를 볶고 아몬드를 따로 볶은 다음 다시 한 번 볶아 내야 되는데 한꺼번에 볶았는지 고소함이 덜하다” 등 얼마나 구체적으로 표현을 잘하는지 입이 떡 벌어졌다. 지명된 학생 중 한 명도 “앞에 발표한 친구와 같아서요”라면서 제자리에 앉는 학생이 없었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급식 비주얼이 식욕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라고까지 발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도 며칠 전 실시한 한글날 기념 교내백일장 작품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각종 미술 관련 디자인 활동이나 스포츠 동아리활동, K-pop 댄스에 비하면 확연히 생생한 글 힘이 부족했다. 감정은 넘쳤으나 감성은 살아있지 않았다. 중간고사 직후라 시험이나 공부에 대한 부담과 답답함을 썼으나 푸념에 그쳤다. 밤 깊은 시간에 찾아오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움과 애틋함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교실 안팎의 사건 사고 속에 못 말리는 중학생다운 솔직한 고백이나 일상 속에 넘치는, 재기발랄한 엉뚱함을 기대했으나 대상에 대한 속 깊은 관찰이나 시선도 읽을 수 없었다.

이미 백일장이라는 대회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며칠간 심사숙고하여 제시한 현실적인 글감도 학생들의 구미에 당기지 않은 듯했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오늘 닥친 학원 숙제를 방해하는 에너지 소모가 될 뿐이다. 중학생 입에서 ‘사는 게 다 그렇죠’라는 생각의 조로(早老)현상이 두드러진다. 글을 곱씹을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도, 생각할 여유와 깊이 있게 여러 경험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다.

자유학기제에 이어 자유학년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들 중학생이 동네북이냐고, 왜 교육정책 실험대상은 항상 중학생이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가 여전히 논란은 있지만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 누적된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 공조와 다양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밑받침이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전면 시행된다면 모든 학생이 중학교 때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읽게 하고, 반드시 에세이를 쓰고 견학과 봉사체험을 다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자기 철학과 취향을 분명히 가지지 않으면 다양한 사람과 즐겁게 어울리며 살아가기 어렵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가는 기회를 얻는 것이 교육이다.

요즘 잘나가는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은 곰처럼 생겼지만 사자다. 친근감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약점을 심었다고 한다. 수사자인데도 갈기가 없고 꼬리가 길면 잡힐까봐 짧은 꼬리를 가졌다. 라이언 자신은 이 콤플렉스가 부끄러운데, 사람들은 그 귀여운 모습과 행동, 상황과 별개인 뚱한 표정이 재미있어 폭발적인 사랑을 보낸다. 우리는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실패와 약점을 포용하고 좀 더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지는 넉넉한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 독서를 통해 그 내면의 힘을 길러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김희숙 <대구 조암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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