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새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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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2   |  발행일 2017-10-02 제30면   |  수정 2017-10-02
잠못이루던 날 새벽 거리서
생각지도 못한 마음의 변화
복잡했던 일들이 정리되고
많은 이가 행복한 마음으로
새벽을 달리는 것을 보았다
[아침을 열며] 새벽운동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새벽에 자꾸 깬다. 나이가 든 모양이다. 누구는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새벽에 자꾸 깨는 것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의 부신(副腎)에서 코티졸이라는 성분을 분비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몸과 마음을 각성시키고 긴장시키기 때문에 잠이 깨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부터 젊은이는 아침잠이 많고 늙은이는 저녁잠이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저녁 일찍 잠든 노인네는 새벽녘 일어나 혼자 킁킁대거나 집안 구석구석을 쑤석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뭇사람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이제 내가 그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노인이 새벽에 깨는 것이 진짜 젊은이보다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스트레스는 물론 걱정거리다. 뚜렷하게 이룬 것 없이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처지, 남겨질 가족들, 그리고 세상사. 특히 나이가 들면 유난히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느는 것 같다. 젊을 때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걱정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그저 남의 일 같았다. 그리고 낙관적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왠지 그 모든 것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비관적이다. 철 모르는 젊은이 손에 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 또한 쓸데없는 짓이다. 그 옛날 중국의 갑골문자에 ‘요즘 젊은이들을 믿을 수 없다’고 적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앞세대가 뒷세대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오랜 현상이고, 그럼에도 세상은 잘 굴러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기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많고, 그러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그래서 부신에서 코티졸이 분비되고, 그러한 결과로 새벽에 각성되어 잠이 깨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이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가 되는 것이다. 결론을 이렇게 맺고 나니 어느새 나는 쓸데없는 걱정거리로 잠을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 서성거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나는 새벽에 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꼭두새벽에.

그리하여 새벽에 걷게 되었다. 좋은 말로 아침운동이지만, 실상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선택하게 된 궁여지책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새벽에 나와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늘 머릿속을 맴돌던 세상사 복잡한 일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기도 하였다. 최소한 해결은 못해도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 이유도 없이 미워하던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새벽을 걷다보니 세상의 많은 사람이 행복한 마음으로 새벽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정하게 소곤거리며 새벽기도 가는 부부, 씩씩하게 체조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젊은 청년들, 그리고 졸랑졸랑 주인의 뒤를 쫓아가는 강아지…. 그들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하루가 행복하고 풍요로울 것만 같았다.

그렇다. 언뜻 세상을 보면 온통 걱정거리로 가득하지만, 다시 보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한들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오히려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나를 바꾸면 세상도 바뀌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 요즘 생각이다. 평생 운동다운 운동 한 번 안 하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깨어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가 발견한 소박한 진실이다.

새벽에 나와 걷자. 그러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긍정의 에너지가 생긴다. 마치 그 옛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주장하던 분이 새벽마다 달렸던 것처럼. 최소한 그것만은 그 분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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