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양 일월산 자생화공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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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9   |  발행일 2017-09-29 제36면   |  수정 2017-09-29
들꽃들과 함께 계절도 피고 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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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 자생화 공원. 일월산 용화광산터를 재생시켜 꽃들의 정원으로 만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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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계단을 오르다 보면 선광장 상부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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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 자생화공원의 연못. 각종 수생식물이 자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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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용화리 3층석탑.

햇빛이 비치고, 안개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구름은 거대한 몸을 무겁게 끌며 동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가을을 마중하는 하늘은 무척 바쁘다. 출발할 때 대구는 일찍 내린 비로 촉촉했다. 의성을 지날 즈음 잠시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영양에 도착했을 땐 햇살이 따스했다. 길 어디에서나 코스모스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길을 인도해주는 별과 같았다.

일제 때 제련소·선광장이 있던 자리
1976년 폐광…오염으로 30여년 방치
2001년 매립 후 우리꽃 정원 새 얼굴
야생화 64종과 향토수종 1만여 그루

가파른 나무계단 올라 다다른 꼭대기
구름 드리운 일월산이 마주하며 반겨
공원 옆 밭 중앙엔 3층석탑 홀로 우뚝


◆ 우리 꽃들의 정원, 일월산 자생화 공원

영양읍의 논은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밭은 더욱 짙은 초록이다. 사각의 논밭이 보여주는 색채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어루만져져서 활기를 띠게 된 육체처럼 빛난다. 읍을 지나면 곧 일월면이다. 반변천을 거슬러 일월산으로 오른다. 매끄러운 정적의 길이다. 꽃들은 지나치는 집들의 마당에서 화려하게 자라고, 길가에는 이따금 붉은 단풍이 반갑고도 놀랍게 다가온다. 홍단풍일 게야. 태어날 때부터 붉은. 그러나 가을의 홍단풍은 기적으로 구출된 사람처럼 한없이 긍정적인 얼굴이다. 여름의 홍단풍은 언제나 좀 막막했다.

9년 만인가. 우연히 만났던 일월산 자생화 공원. 태풍의 나날 속에서 노란 애기원추리와 연한 청보라 빛의 벌개미취를 잔뜩 피워냈던 그곳을, 오래된 폐광산의 매혹을, 잊은 적 없다. 참담한 유적에서 피어난 꽃들이기에 그 아름다움은 특별했다. 내심 대단한 기대를 하였으나 꽃은 드물다. 너무 늦은 것도, 너무 이른 것도 아니다. 코스모스는 어김없이 피어 있다. 보라색 부처꽃과 벌개미취도 피어있다. 우리 꽃들은 소박하고도 품위 있고 우아하다. 무리지어 피어도 무엇도 압도하지 않는다.

일월산 자생화 공원은 일제강점기 때 제련소와 선광장(選鑛場)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땅은 30여 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심하게 오염되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었고 가까운 계곡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했다. 2001년 오염원을 완전히 밀봉해 매립했다. 그 위를 깨끗하고 좋은 흙으로 덮고 일월산 일대에서 자생하는 순수 우리 꽃들을 심었다. 꽃향유, 하늘매발톱, 벌개미취, 일월비비추, 쑥부쟁이, 과꽃, 구절초, 낙동구절초, 상사화, 동지꽃 등 64종의 야생화와 만 그루가 넘는 향토수종의 조경수를 식재했다. 하늘말나리 같은 희귀한 꽃과 고산 지대에 자생하는 야생화도 볼 수 있다.

조르르르 물소리가 들린다. 풀숲에 감춰진 수로를 타고 물이 흐른다. 연못은 일월산을 품었다. 조지훈의 시비가 서 있고 장승들이 굼실굼실 솟아 있다. 화살나무 이파리는 이글이글 붉다. 꽃무릇은 까맣게 바짝 말라 대지에 몸을 구부리고 깊이를 살피는 듯 허리를 꺾고 있다. 사람 없는 정원에 정자들은 느긋하다. 비가 새 오줌처럼 내리더니 이내 햇살이다.

◆ 서있는 광산, 용화광산 선광장

옛 광산은 가파른 산에 가파르게 서있고 가파른 나무계단이 광산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전진과 멈춤을 반복하며 계단을 오른다. 촘촘한 계단은 조금 위험하다. 뒤돌아보면 꽃들의 정원이 한눈에 보인다. 그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길의 부드러운 곡선도 보인다. 소나무의 거친 몸 사이로 광산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면을 가진 광산. 정확한 이름은 용화광산 선광장이다. 선광장은 채굴한 광석을 기계 혹은 화학적으로 골라내 광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는 곳이다. 일제 때부터 약 40년간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 은, 동, 아연 등을 이곳으로 운반해 선별하고 제련했다.

폐허가 된 크메르의 성벽 같다. 광산이 운영되던 당시에는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 인근 주민은 1천명이 넘었고 광산 노동자는 500여 명에 달했다. 전기도 공급되고 있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광산은 계속 운영되었다 한다. 폐광된 것은 1976년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금속 제련 과정에서 사용한 비소나 청화소다 같은 화학성 독성 물질과 폐광석 등만 남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참 이상하고 을씨년스럽다. 새소리도, 재빠르게 달아나는 다람쥐 소리도,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선광장 꼭대기에 다다른다. 등산로 옆에 광산의 검은 입구가 있다. 검은 수레가 장식처럼 놓여 있다. 꼭대기에 의자들이 관객처럼 앉아 있다. 아래 공원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일월산과 마주한다. 일월(日月), 해와 달이 뜨는 산이다. 구름이 신처럼 드리워져 있다. 메아리의 심연처럼, 고요하다.

◆ 용화리 3층석탑

일월산 자생화 공원 옆에 밭이 있다. 고추, 깨, 가지, 당근, 파 등등 온갖 것들이 싱싱하게도 자라고 있는 밭이다. 그 한가운데에 석탑이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다. 밭의 가장자리에 탑으로 가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다. 탑은 네 개의 판석을 세워 조립한 기단석 위에 높이 3.41m로 올라 있다.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형상은 잘 남아 있다. 안정감 있는 단아한 모양이다.

밭 앞 길가에는 집 한 채가 있다. 화단에 온갖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는 집이다. 주인아저씨는 마당에서 고추를 씻고 계신다. 반들거리는 고추들이 기계를 통과하자 더 반들거리며 쏟아진다. 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손이 만드는 소리. 일월산을 바라본다. 심연에 갇힌 메아리도 이제 깨어난 듯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안동 분기점에서 영덕 방향으로 가다 동청송·영양IC에서 내린다. 31번 국도를 타고 영양읍 통과해 봉화 방향으로 계속 가면 국도변에 일월산 자생화공원이 자리한다. 이용료는 없다. 화장실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용화리 3층석탑은 일월산 자생화공원에서 봉화 방향으로 몇 m만 더 가면 오른쪽 밭 가운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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