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때로는 말보다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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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9 07:37  |  수정 2017-09-29 07:37  |  발행일 2017-09-29 제16면
[문화산책] 때로는 말보다 눈빛으로

해외여행을 염두에 둔 예비 여행자들이 꼭 묻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바로 “저 영어 정말 못 하는데 여행하는데 괜찮을까요?”다. 그럼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을 한다. “유창하면 더 좋겠지만, 사실 말보다는 눈빛으로 통하는 게 더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스물 셋 시절, 그 당시 내가 영어를 못 했다는 걸 누군가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아니! 그렇게 언어가 안 되는데 여행을 할 수 있다고요?’ 하면서.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 당시의 나는 외국인과 대화는커녕 영어로 자기소개조차 제대로 못 할 그런 수준이었으니까. 아마 비교적 어렸기 때문에 패기가 가득차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때와 회화 실력이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 역시 영어 때문에 여행이 두렵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여행을 할 때는 말 보다는 언어 이외의 것들로 상대와 소통하는 일이 훨씬 더 많으니까.

인도에서 26시간짜리 장거리 기차를 탔을 때였다. 그 칸 안에 한국인은 달랑 나 하나. 나는 힌디어가 안 되고, 그 칸에 있던 인도인들은 영어가 안 되는 상황이라 우리는 무려 26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꺼내질 못했다. 하지만 ‘말’을 뱉어야만 ‘대화’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수첩과 볼펜을 꺼내 그림을 그렸고, 그들은 그 펜 끝으로 그려지는 형상에 골똘히 집중했다. ‘물 마시고 싶어’ ‘도착하려면 얼마나 멀었어?’ ‘나 화장실 갈 건데 짐 좀 맡아줄래?’ 그들과 나는 그림과 손동작, 그리고 오로지 얼굴 표정만으로 26시간을 소통했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데 필요한 웬 만한 대화는 모두 눈빛으로 해결을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부대끼다보니 언어는 생각보다 중요치가 않았다. 그저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무언의 의미에 가만히 집중을 하다보면 굳이 문장을 만들어 입 밖으로 뱉지 않아도 그 관계는 충분히 돈독해 질 수가 있더라고. 그렇게 나는 나의 모든 여행을 소리가 없는 대화, 언어가 없는 소통들로 알록달록 물들여 나갔다.

이처럼 여행지에서 만큼은 영어 문법 그까짓 것 좀 잘 몰라도, 발음이 유창하지 않다고 해도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결국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 언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너무 겁먹지는 말자. 눈앞의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 얼마나 집중을 하느냐, 내가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가 결국 그 여행의 색깔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줄 테니까 말이다. 서현지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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