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장애인시설에서 격리 생활…“나는 홀로 서고 싶다”

  • 손선우,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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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8 07:23  |  수정 2017-09-28 07:25  |  발행일 2017-09-28 제6면
최장 연휴 앞두고 살펴본 장애인 실태
장애인 탈시설 연구조사 결과
58.6% “시설 떠나고 싶다”
실제 자립률은 2.5%에 불과
정부 기본정책 시설에만 집중
20170928
정하상씨(52)는 시설 밖에서 맞는 두번째 추석을 앞두고 자신의 자립을 돕는 정주리 활동가와 함께 이웃주민들에게 명절 인사를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최장 열흘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다. 유례없는 긴 명절로 즐거운 함성을 내지르는 이들도 있지만, 탄식을 내뱉는 이들도 있다. 후자는 사회에 통합되지 못한 채 시설에서 지내는 장애인들이다. “복지시설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이 찾아가지 않아?”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장애인은 이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가족이 오붓하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명절은 이룰 수 없는 바람일까. 영남일보는 추석을 앞두고 언젠가 더 나은 삶으로 한 발짝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갖고 자립에 나선 이를 만나봤다.

◆ 정하상씨의 소박한 명절 소망

정하상씨(52)는 평생 설·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낸 날이 한 번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보육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돼선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어서다. 지적장애 3급인 정씨는 시설에서 중학교 과정까지 마쳤지만 그 뒤로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20여 년간 전국을 돌며 공장이나 농촌 등지에서 힘겹게 일했다. 명절다운 명절을 쇤 적이 없다.

정씨에게 가족이 오붓하게 함께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명절은 ‘상상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 정의된다. 보육원과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쇠는 설·추석은 자원봉사자가 내민 온정에 기대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가 열어주는 행사로 떠들썩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음 한편에는 ‘공허함’이 남는다. 그래서 명절이 무의미하다기보다는 더 외롭단다.

그는 “명절에 대학생들이 봉사하러 오면 너무 좋았다. 온갖 과자도 먹고, 식당에서 파티를 열고 노래를 부르면 재미있다. 그런데 왔다가 다 가버리면 허전하다”고 말했다.

그런 정씨가 지난해 3월, 8년간 지내던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준비 중이다. 이유는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고 싶어서다. 그는 완전자립을 해 가정을 꾸리고 남들처럼 명절을 보내려는 소박한 꿈을 세웠다. 그는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을 시설이 아닌 주택에서 보냈다. 시설 안에 있을 때도 자원봉사자들이 잘해주니까 즐거웠지만 밖에서 쇠는 명절이 더 좋았다”고 했다.

정씨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자립생활 준비과정을 밟고 있다. 이 과정은 장애인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다. 정씨는 사회복지 전담인력인 정주리 활동가(여·26)의 도움을 받아 완전자립 생활로 가기 전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자립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정씨는 보육원에서 나와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기까지 26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공장 등에서 일할 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업주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려 취업하는 데 두려움이 크다. 또 직장을 구할 경우 국가에서 나오는 매달 약 60만원의 생계비가 줄어드는 것도 자립의 걸림돌이다. 현행법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추후에 높아지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정 활동가는 “장애인 근로자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정씨는 생계비를 못 받고 일한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과거 직장에서 경험한 임금체불 문제도 취업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귀띔했다.

◆장애인은 격리되는 게 당연한가

정씨처럼 과감하게 탈시설을 선택하는 장애인은 극히 드물다. 27일 대구시에 따르면 2010년부터 최근까지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자립생활 지원금 지급 건수는 37건이다. 1년에 4명꼴로 홀로서기를 한 셈인데, 시설 거주 장애인 수가 1천472명(2017년 6월 말 기준)에 견줘서는 자립률이 2.5%에 불과하다.

시설에서 지내는 장애인 가운데는 자립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 대구시가 2012년 대구경북연구원을 통해 연구용역을 한 장애인 탈시설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조사를 받은 220명 가운데 58.6%가 ‘탈시설을 희망한다’고 답변했다. 이유는 ‘외출·식사·취침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라는 답변이 32.6%에 달하고, ‘개인 사생활 보장’이라는 답변이 16.3%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수용시설’에 보내는 것이 정부의 기본정책이다시피 돼 있는 상황이다. 대구지역 시설 거주 장애인 가운데 자발적 입소의 경우는 7.3%에 불과하다. 비자발적으로 시설에 입소하는 비율이 90%가 넘는데, 시설 입소기간은 10년 이상이 85.4%에 달한다. 이 중 40.9%는 20~30년을 시설에서 지낸다. 입소기간이 긴 까닭은 시설에서 식사와 주거를 제공받는 형태로는 되레 사회생활 능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은 사회와 격리된 채 반평생을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이 시설 안에서는 절대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탈시설을 주장한다. 시설이라는 공간 안에서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은 단체생활, 안전 등의 명목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질 좋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시설의 한정된 서비스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제한하게 한다. 집단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규율을 강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로 외국에서는 장애인 시설을 폐쇄하는 추세다. 캐나다는 2009년 장애인 거주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장애인 거주시설에 쓰던 예산은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개발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스웨덴은 이보다 앞선 1999년에 모든 장애인 시설을 폐쇄한 바 있다.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의 80%가 탈시설 이후의 생활에 만족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 복지정책의 방향은 탈시설로 설정돼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고 있다. 서울시가 지자체 중 처음으로 ‘탈시설화 계획’을 수립, 진행함에 따라 광주와 대구 등에서도 탈시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 소규모화’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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